메종 에브라, 단순함 속에 깊이를 담다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보르도 와인
프랑스 와인은 전통과 품질에 대한 신뢰감만큼이나 어렵다는 인식이 따라다닌다. 특히 와인을 처음 마시기 시작한 이들이라면, 우선 복잡한 레이블에서부터 선뜻 접근하기가 쉽지 않고 지역과 등급 구분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다. 물론 알수록 즐거워지는 것이 와인의 세계지만, 보다 접근성이 뛰어난 와인이 되기 위해서는 쉽고 친근한 첫인상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소비자들이 쉽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메종 에브라(Maison Hebrard)의 노력은 주목할만하다. 와이너리가 추구하는 철학을 고수하면서도 보르도 와인의 복잡다단한 세계를 명확하고 단순하게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메종 에브라는 오랜 기간 소비자들의 기대와 입맛을 분석한 끝에 보르도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와인을 만들면서 함축적이고 핵심적인 부분을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해 고심한 듯하다. 첫인상을 결정 짓는 레이블에는 빼곡한 그림이나 문구 대신, 각 와인의 등급에 따라 다른 문양을 삽입한 엠블렘을 전면에 내세워 심플한 인상을 준다. 이는 현재 메종 에브라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자 하는지를 보여주는 한가지 예이다.
그렇다면 메종 에브라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에브라 가문이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시점부터 살펴보면, 시기는 18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생떼밀리옹(Saint-Emilion)의 1등급 샤토인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을 구입하면서부터 양조 기술을 축적해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르도 가론(Garonne)강 우안 지역에서 확고한 명성을 쌓아왔다. 현재까지 8대를 이어오며 와이너리를 경영해온 에브라 가문은 1983년 생떼밀리옹에 메종 에브라를 설립했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주인공은 바로 와인메이커이자 경영자인 도미니크 에브라(Dominique Hebrard)였다.

 

샤토 슈발 블랑의 명성을 이어온 와인메이커
지난 4월 18일 저녁, 도미니크 에브라와 함께하는 와인메이커스디너가 개최되었다. 생떼밀리옹에서 태어나고 자란 도미니크 에브라는 샤토 슈발 블랑의 양조자로 활약했고, 1998년 LVMH 그룹에 와이너리를 매각할 때까지 샤토 슈발 블랑의 공동 소유주이기도 했다. 와인메이커로서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추진력도 발휘해왔는데 현재 그가 공동 소유주로 있는 샤토 벨퐁-벨시에(Chateau Bellefont-belcier)는 2006년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 클라세를 받았고, 2000년 구입한 샤토 트리아농(Chateau Trianon)은 작은 규모지만 그의 투자로 인해 매출량과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향상되었다.
와인메이커스디너에서 도미니크 에브라가 소개한 메종 에브라 보르도 시리즈 6가지 와인은 와인메이커가 담아내고자 한 철학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날 행사가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된 것은 도미니크 에브라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와인, 샤토 슈발 블랑 1995년 빈티지가 함께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도미니크 에브라는 1990년 아버지 자크 에브라(Jacques Hebrard)가 은퇴한 뒤 1991년부터 직접 샤토 슈발 블랑의 와인 양조를 담당했으며, 1995년 빈티지는 그가 양조를 맡은 이후 최고의 빈티지로 꼽는다. 그는 당시 포도를 수확한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설사 기후가 좋지 않더라도 떼루아 자체가 와인에 깊이를 더해줄 것”이라고 했던 아버지의 말씀을 언급하며 떼루아의 표현력을 강조했다.
땅에 대한 믿음과 대를 이어 쌓아온 기술력은 메종 에브라 와인에까지 이어졌다. 메종 에브라 보르도 시리즈를 만나는 것은 단순히 눈앞에 놓인 6가지 와인을 시음하는 것이 아니라 보르도의 떼루아와 개성을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와인메이커의 경력과 철학을 설명해주는 역사적인 와인을 함께 시음하며, 그가 걸어온 길을 이해한 덕분이었다.

 

심플함 속에 담긴 철학
와인을 시음하는 동안, 도미니크 에브라가 여러 번 반복한 표현은 “다가가기 쉽고, 즐기기 쉽게”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메종 에브라는 편안하고 즐겁게 보르도로 안내하는 와인이다. 심플함을 추구하면서도 품질에 대한 욕심을 지키며, 대량생산을 하지 않는다. 각 아뻴라시옹의 개성을 반영하고 각 포도품종의 특성을 담아내며 충실하게 보르도의 전형성을 표현했다.

 

메종 에브라 보르도 블랑 2010 (Maison Hebrard Bordeaux Blanc 2010)
가론강과 도르도뉴강 사이에 위치한 앙트르 두 메르(Entre-deux-Mers) 지역의 화이트 와인. 60%의 소비뇽 블랑와 40%의 세미용을 블렌딩했으며 소비뇽 블랑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오크를 사용하지 않았다. 밝은 골드 컬러에 열대과일의 발랄한 산미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와인이다.

 

메종 에브라 보르도 루즈 2010 (Maison Hebrard Bordeaux Rouge 2010)
도미니크 에브라는 이 와인을 소개하며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와인”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보르도 루즈는 복잡하지 않고 타닌도 강하지 않기 때문에 부드럽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오크 숙성을 하지 않았고 메를로 70%와 까베르네 소비뇽 30%를 블렌딩했으며, 신선한 산미와 깔끔한 피니쉬가 인상적이다.

 

메종 에브라 꼬뜨 드 보르도 프리미엄 2009 (Maison Hebrard Cotes de Bordeaux Premium 2009)
2009년 이후로 보르도 우안 지역의 4개 AOC가 하나로 통합되었는데 그것을 ‘꼬뜨 드 보르도’라고 한다. 진흙과 석회질 토양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들어졌으며, 보르도 루즈보다 복합적이고 풍부한 과실 향을 느낄 수 있다. 60% 메를로와 40%의 까베르네 소비뇽이 블렌딩 되었다.

 

메종 에브라 메독 2009 (Maison Hebrard Medoc 2009)
메종 에브라가 추구하는 바대로 쉽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5~10년 정도 보관이 가능할 만큼 잠재력을 지닌 와인으로 소개되었다. 메독 북부 지역의 떼루아에서 생산되며, 12~18개월 간 오크 숙성을 해 과실 향과 바닐라의 풍미가 조화롭다. 메를로와 까베르네 소비뇽이 절반씩 블렌딩 된 와인이다.

 

메종 에브라 샤토 랑동 메독 2009 (Maison Hebrard Chateau Landon Medoc 2009)
까베르네 소비뇽 70%, 메를로 25%에 말벡 5%가 블렌딩 되었으며, 공기에 노출된 뒤의 변화를 즐길 수 있는 와인이므로 1~2시간의 디캔팅이 필요하다. 15~18개월의 오크 숙성을 통한 은은한 바닐라 풍미와 농익은 과실향이 우아하게 다가오고, 스파이시한 피니쉬가 매력적인 여운을 남긴다.

 

메종 에브라 샤토 하모니 생떼밀리옹 그랑 크뤼 2009 (Maison Hebrard Chateau Harmonie Saint Emilion Grand Cru 2009)
생떼밀리옹 북쪽에 위치한 포도원의 와인으로, 약 4헥타르 규모의 포도밭에서 생산된다. 메를로 60%, 까베르네 프랑 25%, 까베르네 소비뇽 15%을 블렌딩했고 손 수확된 포도로 한정 생산하는 메종 에브라의 최고 와인이다. 아직 젊지만 탄탄한 미감 속에 깊은 풍미가 느껴지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3시간 정도의 디캔팅을 한 뒤 마시길 권한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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