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와인의 기준이 되기 위하여
 - 이 기갈의 오너, 필립 기갈(Philippe Guigal)과의 만남

 

론 와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이것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연상작용과도 같다. 명실공히 론 와인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이 기갈(E. Guigal). 한 와이너리와 특정 지역이 이토록 쉽게 연결되는 이유는 여러 와인을 통해 쌓아온 두터운 신뢰감 덕분일 것이다. 프랑스 론의 앙퓌(Ampuis) 지역에 위치한 가족 소유 와이너리 이 기갈의 역사는 1946년 에띠엔 기갈(Etienne Guigal)이 포도원을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후 마르셀 기갈(Marcel Guigal)과 필립 기갈(Philippe Guigal)까지 3대에 걸쳐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론 전체에서 가장 성공적인 와이너리로 우뚝 섰다. ‘라라라’ 시리즈로 불리는 라 물린(La Mouline), 라 투르크(La Turque), 라 랑돈(La Landonne)은 이 기갈이 부흥을 일으킨 꼬뜨 로띠(Cote-Rotie) 지역의 상징과도 같다.
이 기갈은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가 극찬한 와인 생산자이자, 그로부터 100점 만점을 가장 많이 받은 와이너리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사실, 이 기갈을 극찬하는 이는 파커 뿐만이 아니다.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이 기갈은 그 이름만 믿고 선택해도 언제나 만족스러운 와인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이러한 명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이 기갈의 현재 대표, 필립 기갈을 만난 자리에서 그 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게 지금까지 이 기갈이 간직해온 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에 앞서 진행된 시음 행사에서 필립 기갈은 명확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풍부한 정보를 전달하며 한국의 와인업계 관계자들과 최대한 세심하고 깊이 있는 소통을 하려 했다. 자신이 생산하고 있는 와인을 소개하기 이전에 론 와인의 전반적인 현황에 대해 언급하며 폭넓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의 말에는 와인의 품질에 대한 확신, 그럼에도 현재 위치에 대해 갖추고 있는 겸손한 자세, 그리고 인간적인 유머까지 묻어났다.
그는 론 지역의 강점과 최근의 성장세를 중요하게 언급했다. “한국에서도 보르도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고 있는 프랑스 와인이 론 와인입니다. 어느새 부르고뉴를 넘어섰어요. 론 지역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다양성에 있다고 봅니다. 넓은 생산지에서 북부론과 남부론의 지형적, 기후적 특징이 다른 만큼 뚜렷한 개성이 있는 와인이 생산되죠.” 론 지역은 공식적인 등급이 없고, 와인메이커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생산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이 기갈은 이미 론 지역 최고의 명성을 얻었지만, 필립 기갈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론 와인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최근이라고 생각해요. 이 기갈의 와인이 96개국에 수출되고 있고 이미 많이 알려졌다고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미얀마에 진출했죠. 이처럼 더 많은 곳에 우리의 와인을 알리려고 합니다.”
필립 기갈의 태도에는 단순히 이 기갈 와인만을 위한 노력이 아닌, 론 지역 대표주자로서의 책임 의식이 엿보였다. 사실 론 지역은 전통적으로 ‘레드의 산지’로 알려져 있을 만큼, 레드 와인의 생산량이 압도적으로 많고 화이트 와인의 생산량은 10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기갈은 화이트 와인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총 생산량의 25퍼센트를 화이트 와인으로 생산해 좋은 평을 얻고 있다. “북부론에서 화이트 와인이 생산되는 꽁드리유, 에르미타쥬, 생 조세프, 크로즈 에르미타쥬는 모두 우리가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지역이죠. 남부론에서도 더욱 활발하게 화이트 와인 생산을 확대하고 있어요. 이 지역의 전문가로서 레드뿐 아니라 화이트 와인에서도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좋은 와인이란 ‘hard working’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간단한 표현이었지만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총 67회의 포도 수확을 했던 에띠엔 기갈, 1995년 샤토 앙퓌를 매입해 꼬뜨 로띠의 새로운 역사를 쓴 마르셀 기갈, 그리고 현재 자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가족들이 포도밭에 투자한 엄청난 시간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말이었다. 물론 세대가 바뀌면서 달라지는 것도 있겠지만 그들의 전통과 철학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 “대를 이어 내려오며 점점 발전을 해나가되, 품질을 향한 한가지 전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비슷한 미각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와 저의 미각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와이너리는 세대 사이에 갈등이 없고 가치관 또한 매우 잘 통하는 편입니다.” 이 기갈은 포도 수확을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포도밭의 관리도 유기농에 가깝게 하고 있지만, 유기농에 포커스를 맞춘 홍보를 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의 뚜렷한 철학은 첫 번째가 품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립 기갈이 생각하는 이 기갈의 미래는 어떨까. 그는 론 지역의 각 AOC에서 기준이 되는 와인을 생산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꼬뜨 뒤 론부터 꼬뜨 로띠까지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있고, 그만큼 소비자들이 이 기갈의 와인을 통해 론 와인을 알아갈 수 있길 바란다는 것. 그래서 이 기갈은 꼬뜨 로띠 단일 포도원에서 항상 훌륭한 품질을 보여주는 ‘라라라’ 시리즈뿐만 아니라, 꼬뜨 뒤 론 와인을 일관되게 좋은 품질로 유지하는 것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많은 관심과 노력이 들어가는 와인이 바로 가장 대중적인 와인인 꼬뜨 뒤 론인 셈이다.    
필립 기갈의 말 속에는, ‘명품’이란 단어가 남발되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 무엇이 진정한 명품 와인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담겨있었다. 그는 와인을 ‘공유’하는 것이라 표현했다. 우리가 하는 가장 큰 실수가 바로 좋은 와인을 혼자 마시는 것이라고. 사람들과 공유하며 기쁨을 나누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와인이라는 것은 그가 지켜가고 있는 또 하나의 가치였다.

 

글_ 안미영

사진_ 신동와인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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