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21닷컴에 보도된 인터뷰 기사입니다. 

[인터뷰] 스크리밍 이글의 CEO, 아만드 드 매그레(Armand de Maigret)와의 만남 
- 자연이 허락하는 최고의 와인을 위해
 
와인을 향한 간절함이 이보다 더 잘 드러나는 대상이 또 있을까. 가지기 위한 간절함, 혹은 오랜 기다림 뒤에 시음하는 그 순간을 향한 간절함. 바로 ‘돈이 있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와인’이라는 이미지로 자리잡은 컬트 와인에 대한 이야기다. 실로 미국 컬트 와인의 여러 브랜드들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구입했다는 사람이나 마셔보았다는 사람은 쉽게 만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혹시 컬트 와인의 생산자들은 의도적으로 소비자들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며 범접하기 어려운 와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그런데 그 답은 와인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이들은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고품질의 와인만을 한정적으로 생산하면서 자연스레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나파 밸리 컬트 와인의 대명사로 꼽히는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의 CEO인 아만드 드 매그레(Armand de Maigret)와 직접 대화를 나눈 뒤 더욱 그런 확신이 생겼다. 이름만 들어도 무의식적인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최고 컬트 와인의 경영자라는 선입견을 가질 새도 없이, 그는 인터뷰 내내 소탈하고도 진솔한 태도로 자신의 인상적인 와인 철학을 들려주었다.
 
대형 와인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Jonata)의 경영을 맡은 그는 아버지가 프랑스인, 어머니가 미국인이다. 프랑스에서 자랐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의 정체성은 프랑스에 좀 더 가깝다고 하면서, 지극히 미국적인 느낌을 지닌 컬트 와인 회사의 CEO가 된 것은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에게 경영을 제안한 이는 와이너리의 소유주이자 미국의 거대한 스포츠 구단주이기도 한 스탠리 크로엔키(Stanley Kroenke)였다. 아만드 드 매그레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오너의 철학을 잘 구현하면서 동시에 젊은 와인 메이커를 이끄는 실질적인 경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는 희소가치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뛰어난 퀄리티로도 인정받고 있다. 아만드 드 매그레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조건은 농사를 잘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도를 구입해오지 않고 우리가 직접 생산하는 포도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적은 원료로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철저하게 포도밭을 관리하고 적절한 시기에 중요한 결정을 잘 내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포도의 수확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화이트 와인인 호나타 플로르(Jonata Flor)의 경우, 복합미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포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수확하죠. 이상적으로 익었을 때 수확한 포도가 와인의 구조감을 형성한다면 약간 일찍 수확한 포도를 통해 산미를 유지시키고 완숙 이후의 포도를 통해서는 무게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포도밭의 면적이 작음에도 짧게는 3차례 분할 수확을 하고, 2008년 빈티지의 경우는 13차례에 걸쳐 수확하기도 했을 정도로 포도 재배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호나타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스크리밍 이글 와이너리의 도전 정신을 읽을 수 있다. 1992년 첫 빈티지가 로버트 파커에게 99점을 받으며 처음부터 경이로운 와인으로 자리매김한 스크리밍 이글의 유명세를 생각해볼 때 새로운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시작하는 일이었을 터. 하지만 이들은 나파 밸리나 소노마 카운티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지역을 찾아 나서며 오히려 개척 정신까지 발휘했다. “유명하지 않은 지역 중에서 좋은 포도밭을 찾던 중,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산타 이네즈(Santa Ynez)에 가게 되었고 그 아름다운 입지에 매료되었습니다. 모래 토양이므로 쉽지만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기후와 토양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확신이 있었죠. 물론 스크리밍 이글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으므로 매우 겸손한 자세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호나타는 2004년 첫 빈티지 생산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신생 와이너리로 인정받았고, 지금은 스크리밍 이글이 낳은 또 하나의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호나타가 이룬 큰 업적은 산타 이네즈 지역에서도 훌륭한 와인이 생산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이 지역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전에도 산타 이네즈에서 와인이 생산되고 있었지만 호나타가 완전히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이제 장기적인 목표는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를 같은 레벨의 와인으로 만드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매년 자연이 허락하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호나타는 엘 데사피오 데 호나타(El Desafio de Jonata), 라 상그레 데 호나타(La Sangre de Jonata)의 두 가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호나타 플로르까지 총 세 가지다.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의 블렌딩으로 생생한 산미와 무게감의 조화를 보여주는 호나타 플로르는 보르도의 고급 화이트 와인에 비견될 만하다. 또 캘리포니아 와인 특유의 부드럽고 충만한 느낌을 선사하는 레드 와인은 탄탄한 구조감과 복합미, 우아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리 무겁지 않은 스타일이다. 아만드 드 매그레는 이러한 부분들이 스크리밍 이글로부터 물려받은 특징이라고 언급했다. “호나타는 스크리밍 이글의 기술력은 물론이고 예술적인 부분까지 물려받았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80퍼센트, 예술적인 부분이 20퍼센트 정도 필요합니다. 호나타의 빠른 성장은 스크리밍 이글의 그 모든 가치들을 잘 이해한 덕분에 가능한 것이죠.” 
 
와이너리의 소중한 가치를 잘 구현해낸 와인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갓 서른이 된 스크리밍 이글의 와인메이커 닉 기스레이슨(Nick Gislason)과 역시 30대 초반인 호나타의 와인메이커 맷 디즈(Matt Dees)는 외부에서 보기엔 놀랄 만큼 젊지만 모두 15세 때부터 와인 양조를 배우기 시작한 오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특히 닉 기스레이슨은 2010년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들과 경쟁해 스크리밍 이글의 3대 와인메이커로 임명되며 큰 화제가 된 인물이다. “와인메이커의 역할은 양조장뿐만 아니라 포도밭에서 일을 지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아를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 사람을 원했습니다. 우리의 와인메이커들은 흙을 만지며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면서 자신의 일을 잘 알고 있고, 또 땅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겸손한 사람들이죠.” 아만드 드 매그레는 와인메이커들이 젊다는 이유로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을 때 그들의 실력과 인성을 믿고 지지했기에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컬트 와인의 정체성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 그 한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워낙 생산량이 적다 보니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스크리밍 이글은 60병, 호나타는 세 가지 아이템을 합쳐도 총 200여 병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스크리밍 이글을 구입하기 위해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대기자 명단은 약 25,000여 명. 지금까지의 철학대로 와인을 만든다면 앞으로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일은 없을 듯하다. 이렇듯 양적 한계가 분명한 만큼 어떤 고객이 자신들의 와인을 마시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최종적인 고객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이 극소량의 와인이 가진 철학과 가치를 잘 알아주는 이들과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래서 회원 관리 방법에 대해서도 늘 고민한다.
아만드 드 매그레는 스크리밍 이글의 가치를 매우 명확히 표현했다. 품질, 숙성력, 가격, 그리고 정서적인 측면까지 총 네 가지라고. “품질은 와이너리가 책임지는 부분이고, 숙성력은 떼루아를 비롯한 대자연이,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며, 와인의 정서적인 면은 소비자가 느끼는 감동과 직결되죠.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와인을 갖기 위한 노력의 과정, 숙성 기간 동안 갖는 호기심과 설렘, 마침내 와인을 오픈해서 좋아하는 이들과 나누는 순간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접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컬트 와인을 두고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면 이쯤에서 오해 하나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생산자들은 수량이 적은 만큼, 와인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다시 한번 농사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다. 모든 것에 때가 있는 법이지만 특히 포도를 생산할 때는 가장 적합한 수확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완전히 다른 와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많은 와이너리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 적절한 시기를 조금씩 놓치기도 하지만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컬트 와인이라 불리는 존재도 하루 아침에 나타나 높은 점수를 받고 화제의 주인공이 된 슈퍼스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을 지켜가는 철저한 원칙이 쌓이고 또 쌓여 지금의 명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될만한 위대한 와인은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갈 때 탄생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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