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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함께 진보하고 있는 와이너리, 아르지아노
  • 어느새 좋아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 존재가 생겼다면 그 다음은 당연하게도 대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지는 단계가 아닐까. 와인과 사랑에 빠진 애호가들이 언젠가 꼭 한번 시도해볼 일이 바로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일 테다. 일상에서 즐기던 와인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와인이 만들어지는 땅을 직접 밟아보고, 공기를 느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르지아노(Argiano)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그야말로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탈리아의 몬탈치노(Montalcino) 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아르지아노 와이너리를 찾아가 직접 본 것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채 고요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진보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오랜 시간 일궈온 땅과 그곳에서 잠들고 있는 와인을 본 뒤에는, 당연하게도 아르지아노 와인을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큰 변화가 있었던 와이너리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음 물론이다.   
     
     
    시간을 잊게 만드는 역사적 공간
    아르지아노를 찾아가던 길에 맴돌던 음악은 풀랑(Poulenc)의 곡, ‘고성으로의 초대’. 교차하는 악기들의 소리가 빚어내는 실내악 선율이 신비로운 오랜 성으로 안내하듯 긴장감 넘친다. 몬탈치노에서 다시 8km 가량, 와이너리 로고가 있는 팻말을 확인한 뒤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난 길을 한참 달리자 현재의 시간을, 시대를 잊게 만드는 그야말로 고성(古城)이 등장한다. 1581년 지어진 뒤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건물의 압도적인 위상은 와이너리를 설명하는 많은 수식어를 그저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100헥타르 이상 펼쳐진 포도원과 올리브나무 과수원은 정남향의 채광과 지중해 바람의 영향을 받고 있다. 에스테이트의 뛰어난 입지는 로버트 파커가 그의 책, ‘The World’s Greatest Wine Estates’에 아르지아노를 소개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만든다. 아르지아노의 포도원에서 자라는 포도는 지리적인 조건에서 이미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남부에 위치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으로 인해 포도가 천천히 익을 수 있으며, 투스카니 지역의 아미아타(Amiata)산은 포도원을 폭풍으로부터 보호해 병충해 없이 여름을 나도록 해준다. 덕분에 아르지아노의 포도는 풍부한 컬러와 맛, 뛰어난 숙성도를 갖추게 된다. 
     
    5세기 전 페치(Pecci) 가문에 의해 지어진 뒤 귀족 가문으로 이어져 오던 이곳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1992년, 아르지아노의 입지에 매료된 백작부인 노에미 마로네 신짜노(Noemi Marone Cizano)가 소유주가 된 시점이다. 그녀는 뛰어난 와인메이커인 지아코모 타키스(Giacomo Tachis)를 와인 컨설턴트로 영입했고 품질 향상과 새로운 와인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들의 열정과 와이너리의 훌륭한 토양, 기후 조건이 맞물려 아르지아노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지역에서 더욱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또 한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올해 초 브라질의 투자 그룹이 와이너리를 인수했고, 그들은 이 역사적인 와이너리를 보존하면서도 빈야드를 더욱 향상시키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컨설턴트 와인메이커인 한스 빈딩 디에르(Hans Vinding-Diers)는 계속 아르지아노의 와인메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아르지아노의 와인이 잠들고 있는 곳
    아르지아노에서 가장 특별한 공간을 꼽으라면 바로 역사가 깃든 지하 셀러일 것이다. 와이너리 건물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자 동굴과도 같은 스톤 셀러의 내부가 넓게 펼쳐지고 줄지어 누워있는 오크 배럴들이 눈에 들어온다. 빛과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이 공간은 와인이 고요히 잠들고 있는 곳,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며 숙성되는 곳이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의 명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숙성기간을 보내는 곳이자, 와인메이커의 배럴 테이스팅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므로 아르지아노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장소인 셈이다. 지하 셀러의 한쪽에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1970년 빈티지 와인 중 일부가 아직 숙성 중이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가치가 적용된 와인들
    지하 와인 셀러와 상당히 대조적인 시설도 있다. 아르지아노는 두 가지 다른 셀러를 함께 갖추고 있는데 전통적인 셀러와 함께, 1999년 도입된 최신 시설에서도 와인을 숙성시킨다. 현재 이들은 생산 과정을 전통적인 방식과 현대적인 방식으로 나눠 진행하고 있는데, 큰 규모의 와이너리인 만큼 효율적이고 발전된 시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는 듯하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수확 시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시험적으로 일부만 사용했던 작년에 이어 올해는 좀 더 많은 비율에 적용했다고 한다. 아르지아노가 뛰어난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것는 최신 기술을 양조에 적절히 적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와이너리의 역사적인 요소와 떼루아가 갖춘 우아함을 와인에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놀라운 집중도나 파워보다도 유연한 밸런스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그 조화로움은 가장 기본적인 와인인 로쏘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산지오베제의 신선한 풍미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와인으로, 2011년 빈티지의 경우 지금 바로 마시기에도 좋으며 10년 정도의 숙성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또, 아르지아노를 대표한다 할만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는 풀바디이면서도 여성스러운 우아함을 갖춘 와인으로 부드러운 타닌과 스파이시한 노즈가 인상적이다. 산지오베제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아르지아노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현재 2007년과 2008년 빈티지를 만날 수 있으며, 지금 마셔도 좋지만 생산연도로부터 10년 정도 숙성된 뒤를 시음적기로 보고 있다. 강렬한 붉은 레이블의 수올로(Suolo)는 '토양(soil)'에서 연유한 이름으로, 역시 산지오베제 100%로 생산되었지만 로쏘 디 몬탈치노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는 확연히 다른 복합성을 보여준다. 2000년에 첫 생산을 했으며, 와인메이커 한스 빈딩 디에르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와인이자, 앞으로 새 오너의 야심 찬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찌감치 전량이 매진되어 와이너리에서도 다음 빈티지의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솔렝고(Solengo)는 지아코모 타키스가 처음 와이너리에 왔을 때 생산을 추진해 1995년 첫 빈티지를 출시했던 와인이다. 까베르네 소비뇽, 쉬라, 메를로를 블렌딩해, 산지오베제와 차별화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다. 
     
    아르지아노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기대했던 것은 그들의 세월을 눈으로 목격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것은 와이너리의 역사는 물론이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그들이 생산하는 와인에 현대적 가치를 적용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레 변화해가는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하게 된다. 


    글_ 안미영

  •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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