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말, 호주의 하디 와이너리를 방문해 하디 가문의 5대손이자 와인메이커 출신의 브랜드 앰배서더인 빌 하디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처음 인사를 나눈 그의 집무실은 놀라울 정도로 소박했고, 그는 인터뷰 내내 겸손한 태도 일행을 안내하며 그의 와인 인생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하디는 와인소비국 1위 영국에서도 판매량 1위인 호주 와인이죠. 런던에서 살던 당시, 동네 슈퍼마켓 곳곳에서 하디 와인을 만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와인임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최근 한국-호주 FTA가 발효되며 호주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 홈플러스를 통해 한국에 새롭게 런칭했습니다. 높지 않은 가격대에서 빌 하디 씨가 언급한 블렌딩의 매력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습니다.

* 아래는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남반구의 땅, 호주 애들레이드(Adelaide). 계절이 정반대의 나라에 도착해 심호흡을 하며 공항을 나섰지만 걱정했던 폭염 대신 맑고 화창한 여름날의 하늘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다. 이미 날씨만으로도 이 땅에서 만날 소중한 인연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흥미로운 와인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차를 타고 향한 곳은 호주 와인 브랜드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이름으로 알려진 ‘하디(Hardys)’ 와이너리의 역사가 시작된 레이넬라(Reynella). 애들레이드에서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 이번 여정 중 가장 설레는 일정인 빌 하디(Bill Hardy) 씨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셀러 넘버원'에서 빌 하디 씨]
 
호주 와인을 가장 처음 세계에 알린 이름, 하디
1853년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에 의해 설립된 하디 와이너리의 5대손, 빌 하디 씨는 현재 브랜드 앰배서더로서 와이너리의 철학과 전통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주인장을 닮은 듯한 소박한 집무실에서 특유의 선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았고, 인터뷰에 앞서 와이너리의 한 역사적인 장소로 안내했다. “여기가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셀러입니다.” 그가 자랑스레 이끈 레이넬라의 셀러에는 하디의 역사가 와인병에 담겨 고요히 숨쉬고 있었다. ‘셀러 넘버원(Cellar no 1)’이라 불리는 이곳은 호주의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로 지정되어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샤토 레이넬라는 영국에서 이주해온 토마스 하디가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장소이므로 160여 년 전 와이너리의 출발점이 된 곳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개척자들의 이야기는 어느 하나 남다르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토마스 하디가 일궈온 하디 와이너리의 발자취는 호주 와인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1857년 첫 와인을 생산함과 동시에 호주 와인 최초로 영국에 수출했으며, 1882년에는 호주 와인 최초로 보르도 세계 와인 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명성은 지금도 여전한데 2013년 영국 브랜드 평가 기관인 인텐저블 비즈니스(Intangible Business)의 브랜드 파워 조사에서 전 세계 와인 브랜드 중 2위, 호주 와인 브랜드 중 1위에 올랐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호주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설립자의 신념을 이어오고 있는 빌 하디 씨에게 하디 와이너리의 역사와 와인메이킹 철학, 그리고 아시아 시장을 향한 포부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며 시음한 와인은 40년간 와이너리에 헌신한 빌 하디 씨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12년 런칭한 윌리엄 하디(William Hardy) 시리즈의 샤르도네였다. 자연스레 테이블에 놓인 병의 레이블에 시선이 갔다. 그는 가문에서 특정 인물을 기념한 와인을 런칭하는 것은 한 세대에 단 한 명만을 선정해 진행한다고 설명하며 5세대에는 그가 선정된 것이니 매우 영광스럽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현재 하디 브랜드를 대표하는 인물인 그는 1972년 와인메이커로 일을 시작했고 브랜드 앰배서더를 맡은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호주에서 농업을 공부한 뒤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양조학을 공부하고 돌아왔습니다. 신세계 와인메이킹이 보다 과학적인 방식에 근거한다면 프랑스에서는 긴 전통이 있는 만큼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구세계와 신세계의 각기 다른 와인메이킹 스타일을 모두 알고 양쪽의 장점을 다 갖추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호주 땅에서 자란 포도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구세계의 멋을 담아낸 것이 브랜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하디는 유럽에서도 크게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이며 특히 세계 최대 와인소비국인 영국에서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와인 브랜드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에게 ‘완벽’을 일깨우는 것
구세계와 신세계 와인메이킹을 언급하며 그는 신세계 와인에서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으로 생기 넘치는 활력과 신선함을 꼽았다. 그 속에서도 하디 와인만이 가진 특징은 무엇일까. “저는 무거운 스타일을 선호하진 않습니다. 하디의 와인은 품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되 과숙한 스타일의 와인이 되는 것은 피하려고 하죠. 신선함과 생동감이 살아있으면서 적당한 타닌과 산도로 입안에서 자극을 느낄 만한 와인을 추구해요.” 또한 덩치 큰 와인보다는 조화로움을 갖춘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빌 하디 씨의 생각은 복합성과 우아함을 담은 ‘피네스(finesse)’라는 표현으로 이어졌다. 하디 와이너리에서 유독 블렌딩을 많이 하는 것 또한 복합성을 위한 것일까. 애들레이드 지역뿐 아니라 호주 여러 지역의 각기 다른 기후에서 자란 포도를 가져와 블렌딩 하는 것은 흔히 ‘싱글 빈야드’에서 생산한 와인을 품질이 뛰어난 와인으로 홍보하는 타 와이너리들과 정반대되는 생각이다. “우리가 블렌딩을 선호하는 이유는 블렌딩을 할 때 ‘완벽’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싱글 빈야드는 한 곳의 떼루아를 담고 있어 독특함을 간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곧 최고나 완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다른 빈야드에서 자란 포도를 섞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완벽을 향한 것일까, 혹은 더 흥미롭고 복합적인 스타일이 될까를 고민하게 되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뛰어난 밸런스와 구조감을 갖추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우아함과 피네스도 이런 조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거죠.” 그가 말하는 우아함이란 맛의 어떠한 요소도 숨어있지 않으며 모든 것이 균형 있게 드러나고 그것이 유지되는 것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에게 쉬라즈로만 대변되는 호주 와인의 이미지는 강하고 집중도가 높은 와인이지만 빌 하디 씨는 오히려 어느 것 하나 튀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스타일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다양한 떼루아를 담아내는 블렌딩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디 와이너리의 노타지 힐 빈야드에 선 빌 하디 씨]
 
아시아 시장에서의 새로운 도약
그는 2년 전 한국을 방문했고, 젊은 사람들이 와인을 흥미롭게 발견해나가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한다. 한국-호주 FTA를 앞두고 호주 와인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현시점에, 하디에게도 한국은 중요하고 발전가능성이 큰 시장일 것이다. 물론 하디 와인은 지금까지도 한국에 소개되어 왔지만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은 유럽 시장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고, 지난 5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온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비해서도 점유율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이번에 홈플러스를 통해 한국에 런칭하는 것이 큰 성장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먼저 호주 와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길 바랬다. “하디는 한 브랜드 내에서 초보자가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의 와인부터 프리미엄 레벨까지 다양한 와인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에요. 그런데 이건 하디뿐만 아니라 많은 호주 와인 브랜드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호주 와인에 대해 데일리 와인이 퀄리티가 좋다는 인식은 있지만 뛰어난 프리미엄 와인들의 존재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소비자들이 하디 와인을 통해 ‘플러스 알파’를 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하디 와이너리의 가치는 간단했다. “저의 선조로부터 1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온 하디의 철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병 속에 담긴 와인의 퀄리티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마케팅이나 세일즈가 중요하다고들 하고 평이한 와인이 뛰어난 마케팅으로 인해 성공한 예도 봤지만, 그것이 한결 같은 퀄리티를 지켜가는 것보다 더 우선시 될 수는 없습니다.”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간단명료한 말이지만 대를 이어 그 가치를 지켜오고 있는 생산자로서의 자부심이 담겨있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하디 와이너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이로부터 얻은 귀한 답변이었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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