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사 밸리의 다양한 초상, 그랜트 버지

 

신세계 와인생산국 중에서 특히 수출 주도형으로 발전한 나라, 호주는 기계화가 가장 잘 발달한 곳으로 손꼽힌다. 시대를 거슬러올라가 초창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18세기 남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묘목으로 뉴 사우스 웨일스(New South Wales)에서 포도 재배를 했지만, 실질적으로 호주에서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이다. 그리고 호주 와인이 급속히 발전하게 된 것은 1850년대. 20세기에 와서는 포도재배와 양조기술에 대한 연구와 투자 덕분에 고급 와인을 포함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며 와인 산업이 더욱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현재 호주의 와이너리는 거대한 기업형 와이너리가 많다. 가족 경영으로 대를 이어 내려오다가 합병을 통해 기업으로 발전한 경우가 대다수.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가족 경영을 유지하며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와이너리가 있다.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에 위치한 바로사 밸리(Barossa Valley)의 그랜트 버지(Grant Burge) 역시 가족 경영을 통해 성공적인 역사를 쌓아온 와이너리 중 하나다. 흔히 가족 소유 와이너리의 장점으로 떼루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양조 기술을 이용해 와인에 섬세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꼽는다. 그러므로개성을 표현하는 데도 유리하며 또 그만큼 탁월한 와인을 생산해낸다.

 

바로사 밸리는 비옥한 토양에서 프리미엄 와인 생산에도 적합한 품질 좋은 포도가 생산되는 곳이다. 겨울과 봄의 적당한 강우량과 여름과 가을의 많은 일사량은 포도 성장에 이상적인 기후. 또 필록세라(phylloxera)의 감염을 겪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에 많은 올드 바인 빈야드(Old Vine Vineyards)도 존재하는데, 그랜트 버지 역시 오랜 포도원을 소유하고 있고 자신만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랜트 버지의 가장 중요한 철학은 바로사 지역 떼루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선조들의 성취를 순수하게 계승해 와인에 표현하는 것이다. 1854년 영국에서 호주로 이민 온 존 버지(John Burge)가 바로사 밸리 심장부에 포도를 재배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고, 5대째 와인을 생산해오고 있는 중이다. 현재 경영자인 그랜트 버지는 포도재배자이자 와인메이커로서 호주 와인 산업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와이너리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지만 뛰어난 퀄리티의 와인을 생산하며 명성을 쌓아왔고, 바로사 밸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지역의 외교사절관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랜트 버지의 와인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다양성이 가장 적합한 단어가 될 것이다. 이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대중적인 와인부터 마니아들이 찾을 법한 컬트 와인까지 범위가 넓다. 와인의 맛과 향 또한 호주 와인 특유의 진한 과실 풍미를 보여주거나, 혹은 호주 와인의 전형성을 무너뜨리며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스타일이다. 그랜트 버지는 흔히 호주 와인의 과제로 언급되곤 하는, 복합적인 우아함을 갖춘 와인을 생산하기 위한 핵심이 바로 자신들만의 양조 기술이라 믿고 이 부분에 가장 집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바로사 밸리의 뛰어난 와이너리로 알려져 왔고 이미 친숙한 와인들도 많은 그랜트 버지는 최근 새로운 수입사 에노테카코리아를 만났다. 얼마 전, 에노테카코리아에서 주최한 그랜트 버지 시음회에는 네 가지 와인이 등장했다. 단 네 가지만으로도 그랜트 버지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각 와인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로사 샤도네 (Barossa Chardonnay 2010)

일반적인 호주 화이트 와인과는 달리, 미네랄 느낌이 강하고 섬세한 산도가 뒤따라와 부르고뉴와 캘리포니아 와인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른다.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약 3주간 발효 과정을 거치고, 전체 와인의 50%는 깊은 풍미를 위해 부드러운 젖산으로 바꾸는 말로락틱(malolactic) 발효를 한다. 샐러드나 구운 해산물류와 좋은 궁합을 보일만한 와인이다.

 

벤치마크 까베르네 소비뇽 (Benchmark Cabernet Sauvignon 2010)

호주 와인의 전형성을 순수하게 보여주며, 가장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다. 프레치 오크와 아메리칸 오크를 절반씩 쓰는 방식으로 12개월 간 숙성 과정을 거쳤다. 스모키한 향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가벼운 탄닌과 산미가 어우러져,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풍미다.

 

바로사 쉬라즈 (Barossa Shiraz 2010) 

바로사 지역에서 손수확한 포도로 양조한 와인으로 풍부한 과일 향과 스파이시한 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양고기와 좋은 마리아주를 보여줄 만하고, 특히 강한 향신료를 사용한 아시아 음식과 매칭을 해도 훌륭한 조화를 이룰 것 같은 와인이다.   

 

더 홀리 트리니티 그르나슈 쉬라즈 무르베드르 (The Holy Trinity G.S.M 2008)

남부론 와인을 롤모델로 삼았다고 소개된더 홀리 트리니티는 그르나슈(Grenache) 46%, 쉬라즈(Shiraz) 31%, 무르베드르(Mourvedre) 23%로 론의 블렌딩 스타일을 따랐다. 파워풀한 미감이 전해지며 낙엽이나 흙, 체리와 라즈베리 등의 아로마가 정교하게 어우러졌다. 대부분의 육류 요리와 좋은 궁합을 보여줄 법하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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