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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의 정수를 즐기다
와인과 음식의 환상적인 궁합에 대해 말할 때 다른 와인생산국보다 특히 자주 언급되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그 어느 국가의 와인보다 이탈리아의 와인과 음식 매칭에서 감탄을 할 때가 많다는 것은 이탈리아의 상차림에서 와인이 단순히 술이 아닌 하나의 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4월 26일 플라자 호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투스카니'에서 개최된 '투스칸 와인 디너'는 음식과 와인 매칭이 탁월한 행사였는데,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도 토스카나 지역의 와인들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번 디너는 와인수입사 엘비와인에서 산지오베제(Sangiovese)의 매력을 깊이 느껴볼 수 있는 행사로 기획했고, 음식을 책임진 플라자 호텔 투스카니의 사무엘 주카(Samuel Zucca) 셰프는 와인 리스트를 미리 받아본 뒤 각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준비했다.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Friuli) 지역의 명문 요리사 가문 출신인 사무엘 주카 셰프는 런던, 두바이, 방콕 등의 톱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고 작년 3월부터 플라자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 와인을 준비한 팀과 음식을 준비한 팀, 양쪽의 철저한 기획과 메뉴 구성은 디너 내내 빛을 발했다. 이날의 메뉴는 와인과의 섬세한 매칭을 고려해 기존 투스카니 레스토랑의 메뉴에는 존재하지 않는 요리까지 선보이기도 했다.
산지오베제의 다양한 매력! 가비아노 & 세나토이오
음식과 와인의 궁합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비슷한 지역에서 동일한 포도로 양조된 와인들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한국에 새롭게 런칭한 카스텔로 디 가비아노(Castello di Gabbiano)는 오랜 전통을 지닌 끼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포도원 중 하나. 12세기부터 와인 양조를 시작해 피렌체의 유수한 가문들로부터 8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왔다. 특히 15세기 초부터 18세기까지 와이너리의 주인이었던 소데리니(Soderini) 가문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와 각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전해져 온다. 무엇보다도 이 와이너리는 그들이 소유한 포도밭과 재배하고 있는 포도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산지오베제 품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와인 품질의 극대화를 위해 최신식 양조 기술을 새롭게 도입했으며, 전통과 기술의 조화를 통해 가비아노만의 개성을 만들어가고 중이다.
투스칸 와인 디너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 와이너리는 세나토이오(Cennnatoio). 토스카나의 끼안티 지역 중심부인 판자노(Panzano) 마을에 위치한 이 와이너리는 옛 메디치 가문의 감옥으로 쓰이던 대저택으로, 수감자들의 가족과 연인들이 감옥을 향해 신호(이태리어로 ‘cenni’)를 보내던 것에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와이너리의 출발은 1971년, 레안드로 알레시(Leandro Alessi)와 그의 부인인 가브리엘라 알레시(Gabriella Alessi)가 이 저택을 구입하여 포도 재배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유명한 와인메이커인 비토리오 피오레(Vittorio Fiore)와 가브리엘라 타니(Gabriella Tani)의 자문을 통해, 1985년 첫 빈티지를 내놓았다. 세나토이오 와이너리는 가비아노와 대조적으로 역사가 길지 않고 규모도 작은 편이지만 천연 이스트만을 사용해 천연발효과정을 거치며,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친환경 와이너리로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디너에 등장한 가비아노와 세나토이오의 레드 와인들은 모두 산지오베제가 중심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같은 품종이 다른 와이너리에서 다른 양조자의 손길을 거쳤을 때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명확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 상이한 느낌은 음식과의 매칭만큼이나 흥미로웠고, 산지오베제 품종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한 듯했다. 투스칸 와인 디너에서 서빙된 와인과 음식의 풍성한 만남을 소개한다.
가비아노 피노 그리지오 2011 (Gabbiano Pinot Grigio 2011)
매칭 음식 : 아뮤즈 부쉐
첫 와인과 첫 음식으로 등장한 가비아노 피노 그리지오와 아뮤즈 부쉐는 가볍고 산뜻한 신전주와 애피타이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식욕을 자극했다. 이탈리아 북동부의 서늘한 기후와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에서 생산된 피노 그리지오로 만든 이 와인은 열대과일과 레몬, 미네랄의 느낌이 잘 어우러진다.
가비아노 끼안티 2011 (Gabbiano Ghianti 2011)
매칭 음식 : 홈메이드 스파게티, 홋카이도산 털게, 체리토마토, 레몬더스트
산지오베제 90%, 메를로 7%, 까베르네 쇼비뇽 3%로 양조된 가비아노 끼안티는 끼안티 지역에서 가장 대중적인 와인으로 손꼽히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팔리는 끼안티 와인이다. 부드럽고 목넘김이 좋아 어느 음식이나 두루 매치하기에 편한 스타일이며 털게가 재료로 사용된 스파게티와도 좋은 만남을 이뤘다. 체리와 산딸기 같은 향긋한 향이 먼저 느껴지며 부드러운 탄닌과 적절한 산도에 약간의 스파이시한 느낌도 전해진다.
세나토이오 끼안티 클라시코 오로 2010 (Cennatoio Chianti Classico Oro 2010)
매칭 음식 : 오리 가슴살, 오렌지허니소스, 발사믹리덕션, 양파, 근대
황금빛 레이블에 연극의 한 장면을 스케치한 그림이 인상적인 세나토이오 끼안티 클라시코 오로는 산지오베제의 클론 중 하나인 산지오베제 그로소(Sangiovese Grosso) 95%에 콜로리노(Colorino) 5%로 양조되었다. 처음 시음했을 때 산지오베제의 느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농후하고 강건한 스타일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글라스 안에서 점차 변화해가는 모습이 느껴진다. 다양한 수상경력으로 가격대비 우수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와인이다.
가비아노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2009 (Gabbiano Chianti Classico Riserva 2009)
매칭 음식 : 양갈비, 핑크솔트
앞서 시음한 세나토이오 끼안티 클라시코와는 대조적으로 산지오베제의 전형적인 특징인 신선하고 부드러운 산미를 간직하고 있는 와인이다. 처음부터 딸기와 체리 등 풍부한 과실향이 올라오고 바닐라와 초콜릿 풍미도 느낄 수 있으며 매끈한 질감으로 우아한 인상을 전한다. 가비아노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부드러운 탄닌 덕분에 핑크솔트를 사용한 양갈비 요리의 맛과 질감을 함께 즐기기에도 훌륭했다.
세나토이오 에트루스코 2006 (Cennatoio Etrusco 2006)
매칭 음식 : 72시간 수비드 소고기 볼살, 양파, 슈가빈, 감자퓨레
토스카나 지역에 살던 에트루리안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종족이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레이블에 담았다. 품종 사용에 자유로운 ‘수퍼 투스칸’이지만 세나토이오 에트루스코는 토착품종인 산지오베제 그로소만을 사용했고, 이는 지역의 영토와 문화, 민족의 힘을 강조하는 레이블과도 연결된다. 손수확 후 최고의 포도만을 골라내어 양조한 뒤 프렌치 오크통에서 16~18개월간 숙성했다. 이 와인 또한 산지오베제의 의외성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하고 진한 풍미를 갖춘 풀바디 와인이다. 양고기나 소고기, 육즙이 풍부한 육류 요리와 즐기기 좋으며 이날 디너에서는 수비드 조리법으로 60도 정도의 온도에서 72시간 동안 부드럽게 익힌 소고기 볼살 요리와 매칭되어 서로의 모습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칸티나 콜리 에우가네이 만조니 모스카토 2012 (Cantina Colli Euganei Manzoni Moscato 2012)
매칭 음식 : 요구르트 3종 디저트, 와일드베리, 허니, 초콜릿
디저트와 함께 서빙된 와인은 베네토 지역에서 생산된 만조니 모스카토 품종의 와인. 한국에 수입되는 만조니 모스카토 와인은 바로 이 와인 한 가지라고 한다. 핑크빛 컬러에 달콤한 베리향과 은은한 장미향이 여성스러운 느낌을 전한다. 일반적인 모스카토에서 기대할 법한 발랄한 기포와 경쾌한 산미 이상의 복합미를 보여줘 디저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글_ 안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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