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이 찬양한 와인, 에스터하지(Esterhazy)

 

가을, 하늘을 향해 카메라 렌즈만 대면 작품 사진이 찍히고, 마음껏 일상의 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축복받은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 이 계절은 특히 와인애호가들과 클래식음악애호가들에게 풍성한 즐길 거리가 이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10월 한 달만 보더라도 나날이 들려오는 와인 행사 소식과 연주회 소식을 들으면, 10월이 단지 31일밖에 없다는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아직 가을이 다 지나가지는 않았다는 위안이 교차할 정도다. 와인과 클래식음악, 두 가지 모두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지금이야말로 1년 중 가장 분주하면서 행복한 때일지도. 그리고 풍성한 음악, 와인과 함께 이 계절을 즐기고 있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오스트리아의 에스터하지 와인을 소개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 아닐는지.

얼마 전, 한 클래식공연 기획사의 홍보담당자는 에스터하지(Esterhazy) 와인을 두고, ‘하이든 필하모니(Haydn Philharmonie)가 해외 공연에 가지고 다니는 와인이라는 말을 했다. 그들이 내한공연을 했을 때도 에스터하지 와인을 가지고 왔고, 덕분에 함께 마셨던 기억이 있다고. 이 와인이 클래식음악 관계자에게 연주자들이 즐겨 마시는 와인으로 각인되어있는 이유는 에스터하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17세기부터 포도경작을 해온 에스터하지 가문은 수세기를 이어오며 유럽의 정치, 문화,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던 귀족 가문이다. 에스터하지 가문의 자손들은 문화예술을 후원하는 것에 큰 관심을 쏟았는데, 하이든은 30여 년간 에스터하지 전속 관현악단과 합창단에서 부악장과 악장을 거치며 음악활동을 하기도 했다. 수많은 교향곡과 현악사중주곡, 오라토리오, 소나타 등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하이든의 음악 중 상당 부분이 에스터하지 가문의 대저택에서 작곡된 것이다. 대범하고도 유머가 느껴지는 하이든의 음악세계와 에스터하지 와인을 쉽게 연결 짓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와인 애호가였던 하이든은 이 가문으로부터 급여의 일부를 와인으로 받았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고, 이러한 예술가와 후원자의 관계를 기리기 위해 현재 에스터하지에서는 하이든의 이름을 붙인 와인도 생산하고 있다. 에스터하지 와인을 사랑한 예술가는 하이든뿐만이 아니다. 괴테 역시 이 와인을 에스터하지의 요정나라(The fairy kingdom of Esterhazy)”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시절 까다로운 예술가들을 만족시켰던 에스터하지 와인의 현재는 어떨까? 400여 년간 와인을 만들어온 에스터하지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쌓아온 노하우에 새로운 기술을 더하고 있다. 에스터하지가 자랑하는 특유의 풍미는 전통과 기술력의 접목에서 나온 것. 2006년 가을에는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Burgenland)주 아이젠슈타트(Eisenstadt)시 관문에 있는 트라우스도르프(Trausdorf)에 최신식 설비와 전시장을 갖춘 새로운 양조장을 열었고, 각 포도경작지의 특성을 글라스 안으로 고스란히 옮겨오기 위해 기술적인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와인은 주로 자국 내에서 많은 소비가 이루어지는 편이지만, 에스트하지 와인은 그 독특한 풍미로 세계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와인을 국내에 수입하는 아이앤제이파트너㈜에서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통이 있고 개성을 간직한 와인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오스트리아의 에스터하지다. 얼마 전, 에스터하지의 CEO인 엘리자베스 캄퍼(Elisabeth Kamper)가 참석한 시음회를 통해 에스터하지의 몇몇 와인을 만날 수 있었는데, 마치 하나의 주제 아래서 탄생한 다채로운 변주곡을 접하듯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와인들이었다.

식전주로 마신 친친(Quinquin)은 에스터하지 가문의 조상 중 명인 프란츠 에스터하지 백작을 기리는 의미로 탄생한 와인이다. ‘상냥한 장난꾸러기라는 뜻을 담은 친친은 밝고 명랑했던 백작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 복숭아 빛깔의 컬러에 크림처럼 부드러운 기포가 올라오며, 물론 식전주로 훌륭했지만 식후 디저트와 함께 해도 좋을 듯한 와인이었다. 곧이어 마신 그뤼너 벨트리너(Gruner Veltliner) 2008은 신선한 견과류 향으로 시작해 미네랄 느낌이 이어졌고, 코코넛 향이 풍부하게 올라오는 샤도네이 라마(Chardonnay Lama) 2007은 오크 숙성을 통해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라마는 고지대에 자리잡은 단일품종 경작지로, 석회질 토양과 호수 근처의 온화한 기후로 설명되는 이 지역의 독특한 특성을 간직하고 있다. 에스터하지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와인, 테소로(Tesoro) 2007은 까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블렌딩한 와인으로, 초컬릿향과 부드러운 타닌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보물(tesoro)’이라는 뜻대로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와인이며 기념할만한 소중한 자리에서 오픈하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을 법하다. 그리고 황금빛 컬러의 디저트 와인 퀴베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Cuvee Trockenbeerenauslese) 2009는 입안을 가득 채우는 달콤한 맛으로 화려한 마무리를 해주었다

 

시음한 와인들은 에스터하지 궁전을 연상시키듯, 모두 기품 있는 풍미를 보여주었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에스터하지 고유의 독창성과 그들이 지닌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오스트리아 문화예술과 조우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막연한 동경이 아닌, 눈 앞에 있는 황홀한 와인 한잔을 통해서 말이다.

 

글_ 안미영
사진제공_ 아이앤제이파트너㈜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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