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오현숙 작가의 와인스케치 전시회를 다녀온 뒤 '와인 그림'을 그리는 유용상 작가가 떠올라, 
석달 전 썼던 인터뷰 기사를 다시 가져와본다. 

유용상 작가의 작품을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지난 2월 코엑스에서 개최된 화랑미술제 때였다.
각 갤러리 부스를 돌며 작품을 감상하던 중 유로갤러리 부스를 지나다 거대한 와인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처럼 세밀하게 묘사된 작품들은, 와인을 아름답게만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

마침 와인 칼럼의 소재를 찾고있던 시기였는데 '와인'을 주제로 미술 작가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써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연락을 취했고, 서면으로나마 작가에게 와인 그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대인의 감각을 표현했다는 그의 작품들은 말 그대로 일상 속의 와인을 보여주는 느낌.
과하게 이미지화하거나 미화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유용상 작가는 5월 초까지 핑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하반기에 또 전시가 있을 듯하다.


The Chosen person_162X97.0cm_Oil on canvas_2010

와인 그림으로 만나는 현대인의 감각

창작을 하는 이들이 와인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예술가들은 한잔의 와인으로 잠시 창작의 고통을 잊고 영감을 얻기도 하고, 와인 자체에 탐미적 관심을 가진 예술가들도 있다.
예술가와 와인. 한병의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예술가들의 창작 과정에 비견할 수 있다면, 둘의 만남은 꽤나 어울린다. 예술 분야 중, ‘와인과 미술의 만남’이라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와인 라벨에 사용된 미술 작품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매해 세계적인 화가의 작품을 라벨에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샤토 무통 로칠드. 그 밖에도 와인 병에 예술을 입혀보겠다는 의도는 종종 시도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한국의 이왈종, 구본창 작가의 작품 또한 와인 라벨로 만날 수 있었다. 이런 경우가 와인과 미술의 협업(Collaboration)에 가깝다면 와인을 좀 더 미술 영역 속으로 깊숙이 끌어온 경우도 있다. 와인 자체를 소재로 삼은 작품으로, 와인을 순수하게 시각적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Good evening-Nonpossession(무소유)_112.1cmX162.2cm_Oil on canvas_2010

화랑미술제에서 만난 와인 그림

얼마 전 성황리에 개최된 제29회 화랑미술제는 신진작가들부터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까지 다양한 예술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트페어였다. 수많은 부스에 전시된 작품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이 있었는데, 바로 글라스에 담긴 와인을 그린 유용상 작가의 작품이었다. 마치 사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선명하면서도 섬세한 터치 덕분에 캔버스에는 생동감이 넘쳐났다.

 유용상은 본래 ‘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온 작가. 이번 ‘와인잔 시리즈’에서는 그 물이 글라스에 담긴 짙은 보랏빛 와인, 글라스에 묻어있는 입술의 흔적으로 표현되었다. 흔들리거나 정지된 화면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와인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캔버스 위에는 보는 이의 시선이 흔들리는지, 와인글라스가 흔들리는지 구분되지 않는 모호함이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유용상의 와인 그림은 마치 ‘순간’을 말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래 지속되는 향을 간직한 듯하다. 화단에서 ‘와인 작가’로 알려진 유용상 작가에게 와인을 그리는 이유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와인의 이미지에 대해 질문했다. 인터뷰를 통해, 그가 우리네 삶과 일상을 와인에 세심히 투영시켜내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와인을 그리는 작가, 유용상과의 인터뷰 -

언제부터 와인을 그리기 시작했나요?
예전 작업에서 물을 주로 그렸는데, 2007년부터 와인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와인을 마시다가 글라스에 담긴 와인을 바라보는데 문득 긴장되는 기분을 느꼈죠. ‘어쩌면 현대인의 감각과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음료가 와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느낀 감정을 모티브로 삼아 캔버스에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와인의 어떤 이미지에 주목합니까?
현대인들의 감각은 순간적이지만 또 한편으론 영원하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와인의 향에는 그런 순간적인 감각과 영원을 함축하고자 하는 깊이가 동시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신비로운 컬러나 빛깔 역시 마찬가지고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감각과 욕망, 그런 양면성에 관심을 가지고 그림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와인잔 시리즈’ 작품을 보면 글라스가 흔들리는 것처럼 몽롱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흔들림’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그린 와인잔은 흔들리고 있지만 곱고 밀도감 있는 화면 처리 때문에 사실적인 느낌은 살아있죠. 이건 순간적이고 영원한 세계에 대한 표현이에요. 그래서 제 그림은 단순히 사진처럼 재현하는 극사실주의가 아니라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이미지나 기억도 포함하죠. 흔들리는 현대인의 몸짓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우린 늘 많이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와인을 마실 때 갖는 느낌을 표현해본다면요?
와인은 오픈 후 첫 느낌과 향,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의 느낌이나 여운이 상당히 다르죠. 와인을 마실 때마다 현대인이 느끼는 감정들, 사랑이나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요. 와인은 그런 인간사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와인을 그리는 과정에서 특히 ‘컬러’ 부분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와인 그림을 처음 시작할 당시, 와인의 빛깔을 어떻게 캔버스에 표현할까, 끊임없이 연구했던 나날이 있었어요. 깊고 신비로운 와인 컬러를 표현하는 것이 화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었으니까요. 수많은 색 중에서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색을 찾기 위해 ‘컬러 디켄팅’도 해보았습니다. 아크릴 물감을 섞어 만든 ‘가짜 와인’을 글라스에 담아보는 것이죠. 와인을 좋아하는 제게는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와인과 관련된 작품을 계속 그릴 계획입니까?
저는 와인에 컨템퍼러리 아트를 접목해 그림을 그리다보니, 어느새 와인애호가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다른 애호가들처럼 와인을 많이 알고 느끼는 데는 부족하겠지만, 시각적으로는 와인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앞으로 그 충실한 결과물이 나올 것이고, 조만간 그룹전과 개인전을 개최해 보다 많은 관람객들과 만나려고 합니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wine21닷컴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네, 와인21닷컴을 통해 와인애호가들을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가 그린 와인 그림으로 많은 와인애호가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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