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음악회 다녀오고나서 블로그에 남겼던 글을 좀 더 정리해, 와인 칼럼을 써봤습니다.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신년음악회처럼, 와인 한잔

 

어느덧 한달. 카운트다운을 하고 2012년을 맞았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인데, 벌써 1월말이라니 시간의 속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듯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2012’라는 숫자 아래에 주어진 12개월의 시간도 둔감한 채 보내버리고 어느새 다시 새로운 해 앞에 서있는 건 아닐까. 설 연휴도 지나가버린 1월말이란, 확실히 이런 염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 즈음이다. 하지만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1월에는 역시 새해맞이의 해사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몇몇 이슈들이 있었는데, 특히 여기저기서 개최된 몇 회의 신년음악회가 그랬다. 일상적으로 와인을 마시는 입장에서는, 몇 번의 신년음악회에 참석하고 나니 올해 와인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관람한 음악회들은 신년음악회라는 이름 아래 준비된 프로그램 구성이 꽤나 재미있었던 자리였다. 대부분 경쾌한 스파클링 와인 한잔이 연상될 정도로 발랄하고 흥겨웠으며, 또 에너지가 넘쳤다. 올 한 해 동안 주목할만한 신예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기량을 선보이거나, 거장 반열에 오른 지휘자와 연주자가 친근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에게 편안한 음악을 선사하는 공연도 있었다.

유독 오래도록 여운이 남은 공연은 지난 1 18일 예술의 전당에서 내한공연을 했던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다. 지휘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페터 구트(Peter Guth)는 요한 슈트라우스를 비롯해 빈을 대표하는 음악가들의 곡을 유쾌하게 지휘하며 악단을 이끌었고, 소프라노 선혜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신년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무엇보다도 이날 음악회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클래식음악 애호가가 아니라면 무겁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온전히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음악회가 진행되는 동안, 처음 객석에 앉았을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적으로 이어졌다. 임선혜는 노래를 하며 아름다운 휘파람 소리를 곁들였고, 페터 구트는 음악회 도중 관객들을 파도타기 하듯 일으켜 세웠으며, 연주자들은 연주 도중에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순회하듯 돌기도 했다. 이런 자리에 음료 한잔도 없어 미안하다는 재치 있는 멘트와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듯이 준비해온 코르크를 관객석으로 날리며 흥을 돋웠다.

빈 슈트라우스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이번 음악회를 통해, 관객들에게 인생살이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없으니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저 음악과 분위기를 즐기면 될 뿐, 악단의 앙상블과 음색, 혹은 지휘 스타일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의미 없어 보이는 무대였다. 또 클래식음악이 공부를 해야만 들을 수 있는 어렵고 격식 차린 음악이 아니라, 배경 지식이 없더라도 충분히 동참해서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도 좀 다른 시각을 열어주었다.

먼저 느끼고 즐기라는 이 음악회의 메시지는 와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겠다. 와인 입문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 중에는 두꺼운 책 한 권 정도는 독파해야 어느 정도 와인을 편하게 마실 수 있고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알고 싶어지고, 그렇게 조금씩 정보를 찾아보며 경험치가 점차 쌓여가는 것이 와인과 가까워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닐는지. 사람마다 처음 와인에 빠져들게 되는 계기는 다양하겠지만 길고 행복한 와인 라이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부담 없이 마음을 열고 즐기는 자세로 시작하는 게 좋을 테다 

또 한편으로는 이미 와인 경험치가 꽤나 쌓였을 때에도 지나치게 경직된 상태로 와인을 대하는 건 아닌가 생각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drinking’‘tasting’이 혼동될 때이다.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서 와인을 마시는 자리에서조차 평가를 하기 위한 감정가의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 물론 테이스팅 노트를 쓰는 것은 매우 좋은 습관이고 기록을 위해 표현방법이나 형용사를 고민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와인을 마실 때마다 언제나 세부적인 요소들을 따져가며 까다로운 접근을 할 일은 아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음악회에서 만났다면 그가 연주자이든 관객이든 모두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고 빠져들지 감상자의 곡 이해도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이는 없다. 콩쿠르에 앉은 심사위원이 아닌 다음에야 팔짱을 끼고 점수를 매길듯한 태세로 감상할 필요도 없으니, 사실 음악회에서건 와인을 앞에 둔 자리에서건 우리는 조금 더 가벼워져도 괜찮다.

새해를 맞고, 설 연휴를 보내는 한 달 사이 와인업계에서 시음 행사는 많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으로 2012년 와인다이어리를 채우게 될 시점이라면, 지금쯤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한번 돌아봐도 좋겠다. 1월의 어느 날, 신년음악회가 제시해준 감상자의 태도처럼, 유연한 자세로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와인을 많이 만나게 되길. 그리고 그런 시간이 쌓여서 자연스레 와인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순간도 맞게 되길 바란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