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순간에 함께한 샹파뉴, 폴 로저(Pol Roger)

프랑스의 명품 샹파뉴 브랜드로 알려진 폴 로저(Pol Roger)는 올해 또 하나의 수식어를 더하게 되었다. 바로 ‘웨딩 샹파뉴’라는 것. 폴 로저는 지난 봄 큰 화제가 되었던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에서 공식 웨딩 샹파뉴로 선정되며, 그간 쌓아온 명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영국에서 로열 웨딩이 있던 4월에는 한국에서도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폴 로저가 특히 인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와인 모임 자리에서는 셀러에 아껴둔 폴 로저를 들고나와 의미 있는 건배 제의를 하기도 했다.
봄날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주었던 폴 로저를 12월 2일, 가문의 5대 직계 후손이자 현재 오너인 위베르 드 빌리(Hubert de Billy)의 방한과 함께 다시 만나게 되었다. 프랑스 에뻬르네(Epernay)에서 태어난 그는 폴 로저 하우스에서 20년 넘게 글로벌 마케팅을 이끌었다. 현재는 폴 로저 샹파뉴 하우스의 최종 승인 과정에 관여하며, 와인메이커인 도미니크 쁘띠(Dominique Petit)와 함께 각 뀌베(Cuvee)의 블렌딩 결정에도 참여한다. 위베르 드 빌리는 올해 윌리엄 왕자의 웨딩 공식 샹파뉴 선정에 대해 “영국의 왕실 공급 샹파뉴 하우스를 포함해 총 7개의 회사가 참여해 경쟁이 매우 치열했지만, 폴 로저 가문이 고수해온 정책과 철학을 인정받아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폴 로저의 특징을 소개했고, 폴 로저가 고집하고 있는 제조 방식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랑스의 대표 샹파뉴 하우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폴 로저는 1849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의 3대 가족 소유 샹파뉴 하우스 중 하나이며 2004년부터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샹파뉴 공급처로 지정되어 폴 로저의 모든 샹파뉴에 ‘왕실 인증서(Royal Warrant)’ 공식 마크가 표기된다. 2차 발효를 거친 뒤 침전물을 모으는 병돌리기 과정인 ‘흐미아쥬(Remuage)’를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직접 진행하는 유일한 샹파뉴 하우스라는 점에서 이들이 얼마나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위베르 드 빌리가 수작업 방식과 더불어 강조한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숙성 과정과 기간이었다. 폴 로저의 지하 숙성고는 약 7.5킬로미터 깊이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에뻬르네 지역에서도 가장 깊고 서늘한 구역이며, 이곳에 약 750만병에 달하는 샹파뉴가 저장되어 있다. 이토록 서늘한 곳에서 오랜 시간 발효를 시키는 것이 우아한 기포의 요인이 된다. “작은 차이가 모여 큰 차이를 이룬다”는 위베르 드 빌리의 말처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수작업과 시간 투자가 지금의 폴 로저를 만든 것이다.
이날,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네 가지 폴 로저를 위베르 드 빌리의 설명과 함께 모두 시음해보았다. 다양한 음식과의 매칭에서도 근사한 풍미를 보여준 폴 로저의 샹파뉴들을 소개한다. 

폴 로저 뀌베 써 윈스턴 처칠 (Pol Roger Cuvee Sir Winston Churchill) 폴 로저를 말할 때 윈스턴 처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경주마 이름을 ‘폴 로저’로 지을 정도로 폴 로저 가문과의 돈독한 관계를 과시해온 윈스턴 처칠은 매일 폴 로저를 마실 정도로 이 샹파뉴를 사랑했다. 1975년에는 윈스터 처칠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처칠 경 생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중후한 샹파뉴가 탄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뀌베 써 윈스터 처칠’이다. 이 샹파뉴의 양조법은 가족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라고 한다. 첫 빈티지 이후 2011년까지 총 12개 최고 빈티지에만 한정적으로 생산되었으며, 지난 7월부터는 아시아나항공 퍼스트 클래스에서 기내 와인으로 선정되어 서비스되고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시음한 빈티지는 1999년이었는데 이것이 가장 최근 빈티지였으며, 내년 즈음에는 2000년 빈티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포도 수확년도부터 9~10년 세월을 숙성시킨 만큼,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버블의 기운과 묵직한 바디감이 상당히 돋보였다.

폴 로저 로제 빈티지 (Pol Roger Rose Vintage)
좋은 빈티지에만 선보이는 폴 로저 로제 빈티지 샹파뉴는 피노 누아 65%에 샤르도네 35%를 블렌딩해 만들며, 약 7년간 병 숙성을 시킨 후에 출시한다. 2002년 빈티지를 시음했는데, 글라스에 따라질 때부터 복숭아 빛깔이 도는 아름다운 핑크빛 컬러에서 매우 고혹적인 샹파뉴라는 인상을 받았다. 풍부한 기포가 끊임 없이 올라오며 토스티한 향에 부드럽고 우아한 맛으로 여운을 남겼다.

폴 로저 브뤼 빈티지 (Pol Roger Brut Vintage)
특정한 해에 수확한 포도만을 사용해 만든 빈티지 샹파뉴. 프리미엄 크뤼와 그랑 크뤼에서 수확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6대 4의 비율로 블렌딩해 만들며 약 8년 간의 병 숙성 후 출시한다. 2000년 빈티지를 시음하며 폴 로저 빈티지 샹파뉴의 꽉 짜인 구조감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다른 샹파뉴에 비해 산도가 두드러진 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발랄함이 잦아들고 무게감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폴 로저 브뤼 리저브 (Pol Roger Brut Reserve)
바로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공식 웨딩 샹파뉴로 선정된 주인공. ‘화이트 호일’이란 애칭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넌빈티지(Non Vintage) 샹파뉴 중 하나로, 빈티지 샹파뉴와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 개성적인 맛과 향을 보여주었다. 편안한 산미에 매끈한 질감으로, 연이어 글라스를 다시 채우고 싶은 샹파뉴였으며 로열 웨딩으로 유명해진 폴 로저의 명성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했다. 

위베르 드 빌리는 2011년이 폴 로저에게 특별한 해였음을 언급하며 한국에서의 성장도 대단했다고 말했다. 한해 동안 매출이 3배 이상 성장했으니 한국 와인 시장에서 괄목한 만한 성과임에 분명하다. ‘윈스턴 처칠이 사랑했던 샹파뉴’와 ‘영국의 왕실 인증 샹파뉴’에, 이제 ‘웨딩 샹파뉴’라는 영광의 수식어까지 더한 폴 로저의 미래 행보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글_ 안미영
사진제공_ (주)금양 인터내셔날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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