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더욱 아름답게 해주는 존재, 와인
- 나라셀라㈜
‘와인을 접하고 난 뒤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이것은 인생의 어떤 극적인 터닝포인트를 의미하는 말일까. 우연한 기회에 마시게 된 와인과의 운명 같은 첫만남이나, 관심과 열정으로 지식을 쌓고 시야가 넓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로 인해 맺어진 인연까지 함축하고 있는 자기고백이 아닐는지.
나라셀라㈜의 신성호 이사는 대기업 기획팀에서 근무하던 중, 와인에 매료되어 와인업계로 인생의 행로를 바꾼 사람이다. 오래 그를 알아온 사람들은 그를 두고 ‘와인계의 신사’라고 말하기도, 또 와인업계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그를 ‘멘토’나 ‘롤 모델’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 회사에서 12년 동안 근무하며 국내외 굵직한 행사를 진행해온 신성호 이사의 행보는 단연 독보적이다. 이번에 그의 첫 번째 와인 도서 <와인 천재가 된 홍대리> 출간 소식을 듣고 기대했던 것도 지금까지 시중에 나온 와인 도서와 다른 특별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만나게 된 그의 책은 와인초보자들에게 재미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내용으로, 특이하게도 소설 형식을 취하면서 효과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사실 ‘홍대리 시리즈’는 이미 많이 알려진 자기계발서다. 신성호 이사는 기존 홍대리 시리즈에서 이어오던 스토리의 골격 안에 와인 이야기를 적절히 녹여냈다. “와인업계에 몸담은 지 10년이 넘어가니, 이 즈음 책을 한번 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중 출판사로부터 책 발간 제안을 받았는데 제가 생각해온 부분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애초에 전문서에 대한 생각은 없었고, 와인수입회사에 근무하며 강의를 해온 저의 경험과 장점을 살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죠. 이 책은 독자들의 눈을 넓혀주고 와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그는 백화점 와인매장 점장으로서 다양한 고객들을 직접 만나본 경험이나, 오랜 시간 여러 청중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온 노하우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주인공 홍대리가 과제를 하나씩 해나가는 과정은 실제로 와인을 배우는 사람들이 특징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한 단계 장벽을 넘어서며 와인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는 과정과도 같다.
다른 와인 서적과 비교했을 때 <와인 천재가 된 홍대리>는 확실히 ‘친절한’ 책이다. 와인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와인을 보다 쉽게 접하고 관심을 갖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 책을 완독한 독자들은 이제 음용의 단계로 넘어가, 한 자리에서 차별성 있는 여러 와인들을 비교해보는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습니다. 특징적인 향에 매달리지 말고 크게 풍미의 계열을 읽는 연습을 하면 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죠. 이 책에서는 포도 풍미에 대한 계열과 품종 정보, 기타 와인상식을 다루고 있는데, 2편을 낸다면 원산지의 특징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는 실용적인 관점에서는 와인을 배우는 것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흡사하다고 말한다. 말을 하기 위해 외국어를 배우듯 와인 역시 마시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외국어를 배울 때 일련의 과정을 거쳐 능숙해지듯 와인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와인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모두 책 속 주인공과 엇비슷한 일들을 겪지 않았을까. 어쩌면
물론, 그간의 세월이 순탄한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와인이 전체 주류 시장에서는 매우 작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규모의 경제가 따르지 못해 어려울 때도 많았다고 한다. 오직 노력과 임기응변만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나, 육체적으로 힘들 정도로 인력이 부족했던 상황도 있었다. 개인적인 시간을 포기하고 일에 매달려온 세월에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칠레 와인 브랜드로 알려진 몬테스(Montes)와 얽힌 이야기도 있다. 2000년대 중반 칠레 와인이 붐을 일으키던 시기에 그는 몬테스의 브랜드 매니저를 맡고 있었고, 타 브랜드의 강한 도전을 받는 상황에 맞서 ‘몬테스의 밤’을 기획하게 되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결과 몬테스 측의 지원과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 2004년 1회를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이후 매해 개최하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몬테스의 밤’이 시작된 이후 몬테스는 더욱 성공가도에 올랐고, 지금 이 행사는 수입사가 주최하는 행사 중에서 매우 존재감이 큰 와인 행사로 꼽힌다.
그렇다면
그가 와인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첫 번째 와인 책을 낸 현재, 회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와인이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마다 와인에 빠져든 계기가 여러 가지이듯, 와인을 평가하는 기준도 다를 수 있고, 동시에 와인을 사랑하는 방식도 다양할 테니까.
신성호 이사를 만나기 전, 그가 와인에서 찾은 키워드가 ‘인생의 여유’ 혹은 ‘기다림’일 것이란 짐작을 했다. 그의 책 속 홍대리가 차근차근 와인에 접근하며 알아가듯, 좋은 와인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에도 똑같이 ‘기다림의 미학’이 적용되는 게 아닐지. 이것이 그가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했다. “촌각을 다투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빠르고 능률적인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와인에서 그런 부분을 배울 수 있어요. 숙성 과정을 건너뛰면 와인의 아름다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와인은 양조자의 손, 유통업자의 손… 등 여러 손을 거치는 데, 와인의 잠재력이 충분히 발현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시간의 손’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 힘들고 답답하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있는 법이죠. 약식이 쉽게 통용되는 세상에 와인이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기다림의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신성호 이사가 와인에서 깨달은 가치는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을 환기시킬 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이다. 그가 알리는 와인이 편하고 재미있게 느껴지고, 그의 강의가 생동감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진실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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