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의 역사를 장식한 샴페인

 

가끔씩 20~30년 전 시대를 풍미한 배우의 최근 소식이 들려올 때, 그를 기억하는지 아니면 생소한 이름으로 여기는지에 따라 자연스레 세대가 나뉘곤 한다. 지금은 가물가물하더라도 한 때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많은 아티스트들, 혹은 여러 문화 코드들이 어느덧 추억의 이름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당연한 순리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문화 콘텐트들을 매일 새롭게 접하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007 시리즈’의 롱런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지난 주, 이 시리즈의 최근작 <007 스카이폴>을 감상하며 세대를 넘나드는 영화의 매력에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1962년 숀 코네리(Thomas Sean Connery) 주연의 <007 살인번호>로 첫 출발을 한 007 시리즈는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6명의 배우가 ‘제임스 본드(James Bond)’를 연기하며 23편의 영화가 제작되었고, 그만큼 많은 악당들과 본드걸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수십 년 전 극장을 드나들며 청춘의 시간을 보내던 과거의 관객들과 아이맥스관에서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영화를 즐기는 현재의 관객들을 동시에 아우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이 작품은 영화사에서 드물게, 세대를 관통하는 시리즈인 것이다.

 

 

007 시리즈는 올해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50주년 기념 전시를 개최하고 있을 정도로 지난 세월 동안 여러 화젯거리를 만들어냈고 영화를 상징하는 소품들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볼랭저(Bollinger) 샴페인. 영화에 등장해 유명세를 탄 와인을 종종 만날 기회가 있지만, 볼랭저 샴페인은 007 시리즈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볼랭저는 지금까지 007 시리즈 중 10편에 레이블을 드러내었는데, 제 6대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가 출연한 최근 작품들만 살펴봐도 2006년 작 <카지노 로얄>, 2008년 작 <퀸텀 오브 솔러스>에 연이어 등장했다. 콧대 높을 법도 한 이 유명 시리즈 영화가 볼랭저의 어떤 매력에 끌린 것일까? 볼랭저의 역사를 살펴보고 풍미를 느껴본다면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829년 설립된 볼랭저 하우스는 까다로운 영국 신사의 입맛을 맞춘다 하여 ‘심술궂은 영국 신사들을 위한 샴페인’이라는 애칭이 붙었으며,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100대 와인 중 샴페인으로는 볼랭저를 최고로 꼽기도 했다. 엄격한 품질 규정 아래 섬세한 블렌딩을 보여주는 볼랭저는 영국 왕실과도 인연이 깊다. 20세기 초반부터 영국 왕실의 공식 샴페인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특히 왕실에 최고 인사가 방문할 때 내놓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고 보면 볼랭저가 007 시리즈에 연이어 등장한 것도 당연하다. 지난 런던올림픽 개막식 때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버킹엄 궁전을 찾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개막식장으로 호위해 오는 장면이 등장할 정도로, 007 시리즈는 영국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영화다. 영국 신사의 이미지를 갖춘 첩보원에게 어울리는 샴페인으로 영국 왕실의 사랑을 받는 볼랭저가 선택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다.


지난 10월 25일 저녁,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주한영국대사관 주최로 <007 스카이폴> 프리미어 시사회가 개최되었다. 이 시사회에는 스콧 와이트먼(Scott Wightman) 주한영국대사와 런던올림픽 메달리스트들, 가수 셰인 등 특별 게스트들이 참석한 가운데, 볼랭저 스페셜 뀌베 브뤼(Bollinger, Special Cuvee Brut)를 시음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었다. 우아한 황금빛 컬러에 단단한 이스트 향으로 남성미가 두드러진 볼랭저의 풍미를 음미한 뒤 <007 스카이폴> 관람이 이어지며, 명품 샴페인과 화려한 시리즈 영화가 서로의 ‘위상’을 드러내었다.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샘 멘데스(Sam Mendes)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잘 드러난 <007 스카이폴>은 볼랭저의 매력과도 닮은 영화다. 제임스 본드의 건재함이나 초기작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을 충분히 담고 있어 50주년 기념작으로 손색이 없다. 빠르게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클래식의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야말로 23번째 007 시리즈, 그리고 변함없이 시리즈와 함께 하는 샴페인 볼랭저가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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