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유사성

- 로버트 몬다비 버티컬 테이스팅

 

캘리포니아 와인의 혁명가, 캘리포니아 와인의 거장, 나파 밸리(Napa Valley)의 황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Robert Mondavi Winery)를 설립한 고(故) 로버트 몬다비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1966년 설립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비전은 나파 밸리에서도 전세계 최고급 와인에 견줄만한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나파 밸리에 위치한 450여 개의 와이너리에서는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지만, 1960년대 그곳에는 대부분 저렴한 와인들을 생산하는 단 20여 개의 와이너리만이 존재했다.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그런 환경에서 고품질 와인 생산을 이끌며 캘리포니아 와인의 한 시대를 개척했다. 반 세기가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이룬 성취와 그로 인해 나파 밸리가 전세계 와인 지도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앞서 말한 로버트 몬다비의 수식어는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니다. 설립자 로버트 몬다비는 지난 2008년, 95세의 나이로 작고했지만 현재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의 혁신적인 이미지를 간직한 채 뛰어난 와인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마스터 오브 와인, 마크 드 베레(Mark de Vere)와의 만남
얼마 전,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와인 교육 디렉터이자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인 마크 드 베레(Mark de Vere) 씨가 한국을 방문했다. 1997년 마스터 오브 와인 자격을 취득한 그는 미국의 24명 마스터 중 한 사람으로서 북미 와인 교육 디렉터를 맡고 있으며 국제적인 와인 심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번 방한에서 그는 와인 클래스, 한식 매칭 디너 등의 행사에 참석하며 한국 시장에 로버트 몬다비 와인을 보다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5일 개최된 버티컬 테이스팅(Vertical Tasting)에서는 로버트 몬다비 까베르네 소비뇽 리저브(Robert Mondavi Cabernet Sauvignon Reserve)를 집중적으로 시음하고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크 드 베레 씨는 “나파 밸리의 상징과도 같은 포도를 꼽자면 단연 까베르네 소비뇽이다. 특히 로버트 몬다비 까베르네 소비뇽 리저브는 가장 좋은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최고의 포도만을 선별해서 만드는 와인이다.”라는 말로 각별한 자부심을 표했다.


유럽의 경우, ‘리저브(Reserve)’라는 단어 사용에 법적인 규제가 있지만 캘리포니아에는 법적 규제가 없다. 하지만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1971년부터 지금까지 최고급 와인에만 사용하면서 리저브 와인에 대한 확고한 신뢰감을 쌓아왔다. 마크 드 베레 씨는 로버트 몬다비 까베르네 소비뇽 리저브가 “뛰어난 빈야드의 특징을 잘 살린 와인”이라는 말을 더했다. 좋은 땅에서 자란 포도가 가진 본연의 매력을 잘 살린 와인이 생산되며, 우아한 타닌이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표현과 취향의 차이, 버티컬 테이스팅
버티컬 테이스팅의 가장 큰 매력은 ‘유사성’을 발견하면서도 각기 다른 표현력을 즐기는 것 아닐지. 같은 와인이지만 다른 해에 탄생했다는 이유로 보여주는 ‘차이’를 확인하는 것은 매해 다른 자연환경과 와이너리의 양조스타일을 동시에 읽어볼 수 있는 방법이다. 마치 각 빈티지에 대한 상세한 가이드를 하듯 테이스팅을 진행한 마크 드 베레 씨의 의견 역시 그랬다. 물론 나파 밸리는 유럽에 비해 빈티지 간의 차이가 크지 않은 편이지만 일관성 속에서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가 각기 다른 느낌의 와인을 탄생시킨다. 그러므로 버티컬 테이스팅은 개인의 취향이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시음이기도 하다.

4년에서 10년까지 숙성된 로버트 몬다비 까베르네 소비뇽 리저브 6종류를 시음해본 결과, 젊고 신선해서 매력적인 것과 세월이 흘러서 아름다운 것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좋다는 판단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로버트 몬다비에서 생산해내는 최고의 와인이 가진 정체성과 각 와인이 보여주는 다양한 멋을 확인했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었다.


Robert Mondavi Cabernet Sauvignon Reserve 2008
85% 까베르네 소비뇽, 8% 까베르네 프랑, 7% 쁘띠 베르도. 어리지만 풍부하고 화려한 풍미를 보여준다. 로버트 몬다비는 진하고 달기보다는 신선함을 간직한 레드 와인을 생산하는데, 이 와인 역시 허브 향 덕분에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도 동시에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풍부한 과일 향과 함께 산도를 유지하고 있어 밝은 인상이다.


Robert Mondavi Cabernet Sauvignon Reserve 2007
90% 까베르네 소비뇽, 7% 까베르네 프랑, 3% 쁘띠 베르도. 카시스, 블랙베리, 블랙올리브의 향이 느껴지는 와인. 2008년 빈티지와 마찬가지로 산도가 살아있지만 확연히 두드러지는 타닌이 특징이다. 까베르네 소비뇽에 블렌딩을 한다면 일반적으로 메를로를 생각하기 쉽지만, 로버트 몬다비에서는 2002년 단 한번 메를로를 블렌딩을 했고 대부분 까베르네 프랑과 쁘띠 베르도를 블렌딩하고 있다. 2008년과 2007년 빈티지 역시 마찬가지. 까베르네 프랑이 우아하고 섬세한 느낌을 준다면 쁘띠 베르도는 진한 과일 맛을 더해준다.


Robert Mondavi Cabernet Sauvignon Reserve 2006
95% 까베르네 소비뇽, 5% 까베르네 프랑. 2008년이나 2007년보다 더 따스한 느낌을 간직한 빈티지다. 마크 드 베레 씨는 2006년 빈티지를 과일 맛과 타닌이 조화를 이룬 면에서 ‘가장 클래식한 나파 리저브’라고 표현했다. 라벤다, 카시스, 블랙베리의 향에 흙내음이 어우러지며 부드럽고 구조감이 뛰어난 와인이다.


Robert Mondavi Cabernet Sauvignon Reserve 2005
94% 까베르네 소비뇽, 6% 까베르네 프랑. 앞서 시음한 와인과 비교했을 때, 신선한 과일 풍미가 한층 숙성된 맛을 드러내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빈티지다. 과일향과 산도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과실 아로마에 연이어 느껴지는 타닌이 강하고 남성적이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갖췄다.


Robert Mondavi Cabernet Sauvignon Reserve 2004
86% 까베르네 소비뇽, 12% 까베르네 프랑, 2% 쁘띠 베르도. 검은 과실 풍미에 정향, 감초 등 향신료의 향이 깊고 풍부하게 전해지며 입안에 머무는 감칠맛이 굉장히 잘 숙성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다른 빈티지에 비해 까베르네 프랑의 비율이 높아, 섬세하고 파워풀한 타닌이 이어지면서도 목 넘김이 상당히 부드럽다. 이날 버티컬 테이스팅에 등장한 모든 와인이 높은 로버트 파커 점수를 받았는데, 특히 2004년 빈티지는 2007년 와인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중 9위에 오르기도 했다.


Robert Mondavi Cabernet Sauvignon Reserve 2002
83% 까베르네 소비뇽, 7% 메를로, 6% 까베르네 프랑, 2% 쁘띠 베르도, 2% 말벡. 생생하면서도 풍부한 과실 풍미를 드러낸다. 마크 드 베레 씨는 현재 10년 동안 숙성된 2002년 빈티지가 앞으로도 10-20년 이상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물론 각 와인의 최고 시음 적기를 말하는 일이란 언제나 쉽지 않으며, 현재도 충분히 즐기기 좋은 와인이지만 더 깊고 다양한 매력을 드러낼 숙성 잠재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