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한 병의 와인을 오픈한 뒤, 조심스럽게 첫 잔을 따라 빛깔을 보고 향을 맡으며 시음을 하는 과정은 사람과의 첫만남과도 흡사하다. 그것이 신중한 면접일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소개를 받거나,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치는 만남일 수도 있겠다. 살면서 겪는 수많은 만남 중에서 새로운 와인과의 대면은 그 과정이 꽤나 섬세한 일이다. 마치 사람을 알아가며 인간관계를 형성해나가듯이.

와인과의 만남에서 첫인상을 결정 짓는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아로마이다. 조심스럽게 여린 향기를 피워내며 자신을 나타내는 와인부터, 풍성한 부케를 내뿜으며 개성을 강하게 각인시키는 와인까지. 와인을 마시면서 종종 여러 가지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인상적인 향 때문인 경우가 많다.

향기를 표현할 때, 뚜렷하게 규정지어 말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후각 기관이 느끼는 부분이 사람마다 미세하게 다르기 때문에 가끔은 누군가에게 좋게 느껴지는 냄새도 또 다른 이에게는 불쾌한 냄새로 인식될 때가 있다. 결국 향이란 매우 주관적인 것일 수밖에. 그런데 와인을 마실 때 우리는 아로마를 묘사하기 위해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요소들을 끌어오곤 한다. 흔히 말하는 과일 향이라던지, 견과류 향, 꽃 향, 심지어 가죽이나 흙, 고무 냄새까지. 시음한 와인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제 막 테이스팅 노트를 쓰기 시작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향 묘사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코끝에 스쳐가는 듯한 섬세한 뉘앙스를 어떻게 하면 잘 언어화할 수 있을까.

아로마를 제대로 알고 표현하고자 하는 이들은 아로마 키트를 구비하곤 하는데 이런 노력이 감각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로마를 배울 수 있는 강좌 중에서는 김준철와인스쿨의 마스터 코스에서, 테이스팅을 하며 와인의 맛과 향을 묘사하는 관능검사 프로그램을 통해 체계적인 강의를 하고 있다. 또 이곳에서 개최하는 와인 아로마 설명회에 참석하면 자연과 가까운 천연향들을 직접 맡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한번 향을 맡는다고 해서 뚜렷하게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시간이 흐른 뒤 반복해서 이 강좌를 듣는 이들도 상당수다.  

얼마 전 준철 원장이 강의하는 아로마 설명회에 다녀왔다. 보통 한 달에 한번 정도 진행되는 이 강의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수강신청이 마감될 만큼 인기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김준철 원장은 향이란 본래 쉽게 기억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사건으로 기억하라고 권한다. 일종의 연상 작용인 셈이다. 이를테면 ‘cedar’, 즉 삼나무 향은 연필을 깎을 때 나는 냄새로 기억하는 식. 향을 이름과 연결 지어 외우려면 어렵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어느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면 쉽다는 것이다. 타고난 후각을 지닌 사람보다는, 향에 대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뒤 옛 기억을 자연스럽게 현재로 불러올 수 있는 이가 아로마를 더 폭넓게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김준철 원장은 와인의 향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좋은 향뿐만 아니라 나쁜 향까지 모두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와인에는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나쁜 냄새를 기억해두는 훈련 역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로마 설명회는 먼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 C. Davis) Ann Noble 양조학 교수 의해 1980년대에 완성된 아로마 휠(Aroma Wheel)을 살펴본 뒤, 90여종의 개별 향을 알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이 설명회의 핵심은 향을 직접 경험해본다는 것이다. 참석자 모두가 와인스쿨에 준비되어있는 다양한 천연향을 맡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더불어 각 향이 어느 나라의 어느 지역, 무슨 품종의 포도에서 주로 나타나는지, 혹은 와인의 어떤 시점에서 나타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미 너무도 익숙한 과일 향이나 꽃 향기도 있었던 반면,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어 매우 생경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향도 많았다. 이렇게 다양한 향을 접한 후라면, 지금까지 한두가지의 특정한 아로마로만 기억하고 있던 와인도 더 새롭고 풍성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향을 만난다. 특히 와인과 함께 하는 인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중에는 기억에 남아있는 향도, 한번 스쳐 지나간 뒤 잊혀진 향도 있다. 물론, 향에 대해 말할 때 정답이란 없다. 향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 단 몇 가지로 집어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와인 향에 대한 감각과 표현력을 풍부하게 키워가는 것은 곧 와인 테이스팅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켜가는 일과도 같다. 그러니 복잡한 향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은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일 것이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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