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21닷컴 최성순 사장님과 와인을 통해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5년.

2001년에 21세기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아 출발했으니 내년이면 '와인21' 이름으로 사이트를 오픈한지 딱 15주년이 된다고 합니다. 그 전신인 '베스트 와인샵&와인뉴스'의 오픈으로부터 따지면 올해가 17년째죠.
그동안 와인21에 글을 쓰면서도 저 또한 회사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기에, 소중한 이야기를 기사화하고 독자들과 와인애호가들, 그리고 와인업계 관계자들과 나누고 싶어 이번에 최성순 사장님께 인터뷰를 요청드렸습니다.


* 아래는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행복한 와인공동체를 꿈꾸며 - 와인21닷컴 최성순 대표와의 만남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사람을 향한 사랑뿐만이 아니다. 와인을 향한 사랑 또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랑에 빠진 이에게 인생의 새로운 행로를 제시한다. 근사한 경험과 소중한 기회를 주니, 이 정도면 사랑 중에서도 특별한 사랑이다. 와인업계 리더들에게 어떻게 이 길로 접어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한결 같은, 그러나 명확하고도 담백한 대답이 돌아온다. “와인이 좋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라는. 와인21닷컴 최성순 대표에게도 이 답은 진실이다. 이 말이야말로 그녀의 와인 인생을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대답이므로, 그냥 진실이 아닌 뜨거운 진실이라 해야 하겠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터뷰를 요청했던 것은 와인21닷컴의 설립 15년을 앞둔 시점에, 그간의 수많은 이야기들과 현재의 좌표,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 시간에 가까운 인터뷰 시간 동안 최성순 대표가 꺼내놓은 이야기 속에는 지금까지 한국 와인시장 성장기의 중요한 순간들이 곳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와인21닷컴 사무실에서 최성순 대표]


와인21닷컴의 모태가 된 것은 최성순 대표가 1998년 설립한 ‘베스트 와인샵 & 와인뉴스’다. 영국에 2년간 거주하다 1996년 귀국해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던 그녀는 주위 외국인 친구들과 와인을 즐겨 마시며 와인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와인보다 더 큰 관심사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인터넷이었다. “1996년 PC통신 천리안에 가입했고 이메일을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또 한국에 인터넷 사용이 시작되던 시점이라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다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재미로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와인공부도 하기 위해 콘텐츠는 와인으로 정했죠.” 그녀의 홈페이지는 오픈 초반부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개인 홈페이지에서 더 나아가 웹사이트 베스트 와인샵 & 와인뉴스를 오픈했고, 이 사이트는 월간조선에서 선정한 ‘한국의 100대 웹사이트’에 꼽히기도 했다. 최성순 대표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와인업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은 2000년. 그리고 2001년 봄에는 21세기를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아 ‘와인21닷컴’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새로운 웹사이트를 오픈했다. 국내 최초의 와인 포털 사이트가 이렇게 출발한 것이다.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회사를 설립한 뒤, 이후의 길은 순탄하기만 했을까. 아무리 인터넷 사용이 보편화되고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하던 시점이라 해도 통신판매가 금지된 상황에서 웹사이트로 수익을 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서 뛰어든 일들은 국내 와인시장에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2000년 몇몇 온라인 동호회들과 함께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졸레 누보 파티를 주최했는데 매우 성공적이었어요. 파티 문화가 상류층만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바꾸고 대중적인 와인 파티로 자리매김했죠. 그래서 다음해에는 더 큰 규모로 보졸레 누보 파티를 열었습니다. 예상 인원의 두 배가 넘는 1400명 정도가 참가했고 와인을 모르는 사람도 보졸레 누보라는 이름만큼은 친숙하게 알게 되었죠.” 와인21닷컴이 주최한 첫 행사였던 이 파티의 성공에 힘입어 2002년부터는 월드 와인&재즈 페스티벌을 개최하며 합리적인 가격대의 전세계 와인들을 소개했다. 2006년까지 매년 개최된 이 행사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파티에 참여하며 와인을 가깝게 즐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7년 경향신문과 함께 개최한 와인벼룩시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행사. 첫날 공중파 9시 뉴스에 보도되며 화제가 되었고 3일간 3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등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성공적인 장터였다. 이외에도 국내 첫 와인 메이커스 디너와 보르도 그랑크뤼 갈라 디너 등 한국 와인시장에 한 획을 긋거나 전환점이 되는 순간마다 그녀는 큰 역할을 해왔다. “한국 와인시장이 역동적으로 성장했던 시기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예요. 그 중심에서 와인 붐을 이끄는 데 와인21이 기여했다는 사실이 제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수익을 별로 내지 못했지만 이 일을 계속 하게 한 원동력이 됐죠. 지금까지도 이처럼 매력적인 직업이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2001년 와인21닷컴 오픈 행사(좌), 2004년 보르도 그랑크뤼 갈라 디너(우)]


와인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와인대중화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초보자들이 와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가이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최성순 대표가 와인21닷컴을 경영하며 지속해온 것 또한 대중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그녀는 와인업계에 뛰어든 지 10년쯤 되어서야 와인이 뭔지 조금 알겠다는 마음으로 2009년 초보자들을 위한 책 「와인공감」을 출간했다. 또 10년을 넘어서자 자연스럽게 한국 와인시장에 대해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겨 와인시장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었고, 2013년에는 주류박람회에서 현황과 예측을 담은 리포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작업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우리나라 와인시장이 고민 많은 청소년기에 접어들었으며 성인이 되기까지 와인21닷컴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와인21닷컴이 주력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가장 공들이고 있는 것은 콘텐츠다. “예전에는 주로 기업체 특판이나 와인 액세서리 온라인 판매, 출장 강의 등으로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제는 판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콘텐츠를 강화해 와인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확고히 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예전보다는 뉴스 매체로서 색깔이 강해지고 업계에서 자리도 잡았지만 아직 부족하니 더 풍부한 콘텐츠를 개발해 나가야겠죠.” 5년 전 처음 객원기자 시스템을 도입해 다양한 기사를 보도하기 시작한 것이 안정적인 콘텐츠 확보에 기반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와인21닷컴의 이름 아래 소믈리에, 와인전문가, 기자들로 구성된 와인 평가단이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를 통해 최성순 대표가 만들어가고 싶은 것은 ‘한국판 와인 스펙테이터’이다. “어떤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업계를 빛내는 스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와인21닷컴이 와인 직업인의 롤 모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싶고, 미래에 우리 평가단에서 ‘한국의 로버트 파커’로 불릴 만한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가장 기본적인 것은 와인 평가를 통해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와인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해주는 일이죠. 와인21닷컴 평가단이 추천했다면 신뢰할 수 있는 와인이라는 인식을 만들어가고, 나아가서는 소비자들이 그런 와인을 직접 고를 수 있도록 가이드해주는 겁니다.” 이와 함께 와인21닷컴의 향후 SNS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자연스러운 와인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지난 15년간 와인시장 한복판에서 뛰어온 최성순 대표가 이끌어온 와인21닷컴의 성장기를 듣고 나니 자연스레 궁금해지는 것은 지금부터 향후 15년간의 모습이다. 와인이 숙성되듯 기업체 역시 세월의 옷이 더해지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법이니까. 그녀는 와인21닷컴이 사람으로 치면 30대 정도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투자를 해왔다면 이제 왕성하게 활동하고 결실도 맺을 즈음이라는 의미다. 그동안 힘들었던 시기를 버티게 해줬던 것은 역시 와인이었다. “가끔씩 마음을 열어주고 용기를 주는 근사한 와인을 만나면 그 맛과 향에 사로잡혀, 포기할까 하던 생각들이 사라지죠. 그렇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보다 잘하는 걸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해요. 저는 좋아하는 걸 선택했기 때문에 힘들었고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도 돌아보니 포기하지 않았던 건 잘한 일이네요. 그렇게 버텨오며 이젠 진짜 잘하는 것들을 찾았으니 앞으로는 더 기대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최성순 대표는 특별한 와인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와인21닷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원격 근무를 하고 회사는 언제든 자유롭게 들러 와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과 같은 곳이었으면 한다고. 효율적이고 유기적인 사이버 네트워킹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그런 꿈 같은 자유가 불가능할 리 없다. 사실 와인21닷컴은 2003년 가로수길에 와인바 ‘샤토21’을 오픈해 운영한 적이 있다. 주주회원을 모집하고 회원들만을 위한 모임 공간으로 만든 멤버쉽 와인바였고 수시로 와인 아카데미, 테이스팅 파티 등을 열어 회원들이 와인을 공부하며 네트워킹을 쌓았던 곳이다. 샤토21은 3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현재 최성순 대표가 꿈꾸는 와인공동체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개념의 와인 카페가 다시 문을 열 법도 하다. 그녀는 와인21닷컴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한 자식 같은 회사지만 목표에 다다르면 이룬 것들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와인이란 존재도 그렇지 않던가. 깊을수록 너그럽고 좋을수록 나누고 싶은 것. 최성순 대표가 가진 이상이 멀지 않은 미래에 현실이 되기를, 한 사람의 와인애호가로서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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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말, 호주의 하디 와이너리를 방문해 하디 가문의 5대손이자 와인메이커 출신의 브랜드 앰배서더인 빌 하디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처음 인사를 나눈 그의 집무실은 놀라울 정도로 소박했고, 그는 인터뷰 내내 겸손한 태도 일행을 안내하며 그의 와인 인생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하디는 와인소비국 1위 영국에서도 판매량 1위인 호주 와인이죠. 런던에서 살던 당시, 동네 슈퍼마켓 곳곳에서 하디 와인을 만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와인임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한국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최근 한국-호주 FTA가 발효되며 호주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에, 홈플러스를 통해 한국에 새롭게 런칭했습니다. 높지 않은 가격대에서 빌 하디 씨가 언급한 블렌딩의 매력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습니다.

* 아래는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남반구의 땅, 호주 애들레이드(Adelaide). 계절이 정반대의 나라에 도착해 심호흡을 하며 공항을 나섰지만 걱정했던 폭염 대신 맑고 화창한 여름날의 하늘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다. 이미 날씨만으로도 이 땅에서 만날 소중한 인연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흥미로운 와인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차를 타고 향한 곳은 호주 와인 브랜드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이름으로 알려진 ‘하디(Hardys)’ 와이너리의 역사가 시작된 레이넬라(Reynella). 애들레이드에서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 이번 여정 중 가장 설레는 일정인 빌 하디(Bill Hardy) 씨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셀러 넘버원'에서 빌 하디 씨]
 
호주 와인을 가장 처음 세계에 알린 이름, 하디
1853년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에 의해 설립된 하디 와이너리의 5대손, 빌 하디 씨는 현재 브랜드 앰배서더로서 와이너리의 철학과 전통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주인장을 닮은 듯한 소박한 집무실에서 특유의 선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았고, 인터뷰에 앞서 와이너리의 한 역사적인 장소로 안내했다. “여기가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셀러입니다.” 그가 자랑스레 이끈 레이넬라의 셀러에는 하디의 역사가 와인병에 담겨 고요히 숨쉬고 있었다. ‘셀러 넘버원(Cellar no 1)’이라 불리는 이곳은 호주의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로 지정되어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샤토 레이넬라는 영국에서 이주해온 토마스 하디가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장소이므로 160여 년 전 와이너리의 출발점이 된 곳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 개척자들의 이야기는 어느 하나 남다르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토마스 하디가 일궈온 하디 와이너리의 발자취는 호주 와인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1857년 첫 와인을 생산함과 동시에 호주 와인 최초로 영국에 수출했으며, 1882년에는 호주 와인 최초로 보르도 세계 와인 쇼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 명성은 지금도 여전한데 2013년 영국 브랜드 평가 기관인 인텐저블 비즈니스(Intangible Business)의 브랜드 파워 조사에서 전 세계 와인 브랜드 중 2위, 호주 와인 브랜드 중 1위에 올랐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호주 와인을 생산하겠다는 설립자의 신념을 이어오고 있는 빌 하디 씨에게 하디 와이너리의 역사와 와인메이킹 철학, 그리고 아시아 시장을 향한 포부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하며 시음한 와인은 40년간 와이너리에 헌신한 빌 하디 씨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12년 런칭한 윌리엄 하디(William Hardy) 시리즈의 샤르도네였다. 자연스레 테이블에 놓인 병의 레이블에 시선이 갔다. 그는 가문에서 특정 인물을 기념한 와인을 런칭하는 것은 한 세대에 단 한 명만을 선정해 진행한다고 설명하며 5세대에는 그가 선정된 것이니 매우 영광스럽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현재 하디 브랜드를 대표하는 인물인 그는 1972년 와인메이커로 일을 시작했고 브랜드 앰배서더를 맡은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호주에서 농업을 공부한 뒤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양조학을 공부하고 돌아왔습니다. 신세계 와인메이킹이 보다 과학적인 방식에 근거한다면 프랑스에서는 긴 전통이 있는 만큼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구세계와 신세계의 각기 다른 와인메이킹 스타일을 모두 알고 양쪽의 장점을 다 갖추게 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호주 땅에서 자란 포도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구세계의 멋을 담아낸 것이 브랜드의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하디는 유럽에서도 크게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이며 특히 세계 최대 와인소비국인 영국에서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가장 친근한 와인 브랜드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에게 ‘완벽’을 일깨우는 것
구세계와 신세계 와인메이킹을 언급하며 그는 신세계 와인에서 더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으로 생기 넘치는 활력과 신선함을 꼽았다. 그 속에서도 하디 와인만이 가진 특징은 무엇일까. “저는 무거운 스타일을 선호하진 않습니다. 하디의 와인은 품종의 특징을 잘 보여주되 과숙한 스타일의 와인이 되는 것은 피하려고 하죠. 신선함과 생동감이 살아있으면서 적당한 타닌과 산도로 입안에서 자극을 느낄 만한 와인을 추구해요.” 또한 덩치 큰 와인보다는 조화로움을 갖춘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빌 하디 씨의 생각은 복합성과 우아함을 담은 ‘피네스(finesse)’라는 표현으로 이어졌다. 하디 와이너리에서 유독 블렌딩을 많이 하는 것 또한 복합성을 위한 것일까. 애들레이드 지역뿐 아니라 호주 여러 지역의 각기 다른 기후에서 자란 포도를 가져와 블렌딩 하는 것은 흔히 ‘싱글 빈야드’에서 생산한 와인을 품질이 뛰어난 와인으로 홍보하는 타 와이너리들과 정반대되는 생각이다. “우리가 블렌딩을 선호하는 이유는 블렌딩을 할 때 ‘완벽’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싱글 빈야드는 한 곳의 떼루아를 담고 있어 독특함을 간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곧 최고나 완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다른 빈야드에서 자란 포도를 섞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완벽을 향한 것일까, 혹은 더 흥미롭고 복합적인 스타일이 될까를 고민하게 되죠. 그래서 결과적으로 더 뛰어난 밸런스와 구조감을 갖추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우아함과 피네스도 이런 조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거죠.” 그가 말하는 우아함이란 맛의 어떠한 요소도 숨어있지 않으며 모든 것이 균형 있게 드러나고 그것이 유지되는 것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에게 쉬라즈로만 대변되는 호주 와인의 이미지는 강하고 집중도가 높은 와인이지만 빌 하디 씨는 오히려 어느 것 하나 튀지 않으면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어우러지는 스타일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다양한 떼루아를 담아내는 블렌딩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디 와이너리의 노타지 힐 빈야드에 선 빌 하디 씨]
 
아시아 시장에서의 새로운 도약
그는 2년 전 한국을 방문했고, 젊은 사람들이 와인을 흥미롭게 발견해나가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한다. 한국-호주 FTA를 앞두고 호주 와인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현시점에, 하디에게도 한국은 중요하고 발전가능성이 큰 시장일 것이다. 물론 하디 와인은 지금까지도 한국에 소개되어 왔지만 이미 확고하게 자리잡은 유럽 시장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고, 지난 5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온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비해서도 점유율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이번에 홈플러스를 통해 한국에 런칭하는 것이 큰 성장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먼저 호주 와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길 바랬다. “하디는 한 브랜드 내에서 초보자가 접근하기 쉬운 스타일의 와인부터 프리미엄 레벨까지 다양한 와인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에요. 그런데 이건 하디뿐만 아니라 많은 호주 와인 브랜드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호주 와인에 대해 데일리 와인이 퀄리티가 좋다는 인식은 있지만 뛰어난 프리미엄 와인들의 존재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소비자들이 하디 와인을 통해 ‘플러스 알파’를 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하디 와이너리의 가치는 간단했다. “저의 선조로부터 1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온 하디의 철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병 속에 담긴 와인의 퀄리티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마케팅이나 세일즈가 중요하다고들 하고 평이한 와인이 뛰어난 마케팅으로 인해 성공한 예도 봤지만, 그것이 한결 같은 퀄리티를 지켜가는 것보다 더 우선시 될 수는 없습니다.” 품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간단명료한 말이지만 대를 이어 그 가치를 지켜오고 있는 생산자로서의 자부심이 담겨있는 말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하디 와이너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이로부터 얻은 귀한 답변이었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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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나오기 열흘 전쯤, 덴비스 와이너리를 방문했습니다. 

사실 영국 와인 중 이 와이너리가 최고라 할 순 없고, 다른 궁금한 와이너리들이 있었으나 런던에서의 접근성을 생각했을 때 가장 가볼만 했던 곳이 여기였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도 잘 갖추고 있어 햇살 좋은 날 근교 여행으로 딱 좋더군요. 

덴비스가 위치한 도킹 지역이 겨울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하다고 해요. 


아래 기사는 와이너리 방문 경험과 5월에 참석했던 영국 와인 생산자들의 테이스팅 행사 등을 덧붙여 전반적인 '영국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영국의 빈야드를 밟다


영국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면 우선 물음표가 붙게 마련이다. 영국이라는 나라와 와인 혹은 와이너리. 이건 들어보지 못한 조합이라는 반응을 종종 접한다. 물론 영국이 세계 최대의 와인 유통 및 소비국임에는 이견을 제시하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고, 와인 교육과 평가에서도 세계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와인 생산에 관해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은 유럽 땅이라 해도 주요 와인 생산국들에 비한다면 영국은 큰 명성을 쌓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영국에서 와인 생산이 활발하지 않았던 이유를 꼽자면 변덕스러운 날씨와 포도나무가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은 토양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와인을 일상적으로 즐겨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산을 위한 노력이 왜 없었겠는가. 아마 영국을 와인 수입국으로만 인식하고 이곳에서도 와인을 만드냐고 묻는다면, 그건 현재 이 나라에 존재하는 430여 개 와이너리에서 퍽이나 서운해할 질문이 되겠다. 

 

영국 와인 생산자 협회(English Wine Producers, EWP) 

영국 와이너리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조직이 있다. 바로 영국 와인 생산자 협회(English Wine Producers, EWP). 몇몇 와인 생산자들에 의해 출발한 이 협회는 현재 영국의 전체 와인 생산자 중 4분의 3 이상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WP는 영국의 각 빈야드와 와인에 관한 탄탄한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소비자들은 물론 와인업계 관계자들에게도 알찬 정보 제공을 한다. 이들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영국 와인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명성을 쌓아가는 것이다. 영국 와인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스파클링 와인을 두고 볼 때, 퀄리티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은 샴페인에 비견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는 ‘명성’이라는 것. 소비자 입장에서 같은 돈을 지불한다면 영국 스파클링 와인보다는 샴페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인지도와 신뢰감 부족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EWP에서는 소비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English Wine Week’를 매년 개최하고, 또 영국 와인 생산자들이 함께 전시회를 열어 바이어와 와인전문가, 기자,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테이스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런던에서 개최된 ‘English Wine Producers Trade & Press Tasting’ 행사는 영국 와인의 광범위함을 확인하고 경험할 수 있는 자리였다. 행사를 준비한 주최측과 각 부스에 나와선 생산자들은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듯했다. 영국도 이 정도로 제법 뛰어난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고.  


[런던에서 개최된 ‘English Wine Producers Tasting’ 현장]

 

영국 스파클링 와인

영국 와인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영국 토착 품종으로 꽤 괜찮은 와인을 생산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서늘하고 비가 잦은 날씨로 인해 레드 와인보다는 화이트 와인 생산이 성공적이었고, 그보다 더 국제무대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스파클링 와인이다. 전문가들이 향후 영국 와인에 더욱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고 꼽는 요소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현상으로 이곳이 와인 생산에 적합한 지역이 되고 있다는 점인데, 전통적인 샴페인 양조 품종인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를 생산하기에도 예전보다 나은 조건이 되었다. 이쯤 되면 몇몇 브랜드를 언급해도 되겠다. 아직 한국에는 수입되지도,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름들이지만 현지 와인업계에서는 이미 탄탄한 입지를 굳혔거나 떠오르고 있는 와이너리들. 이들이 공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와인은 역시 스파클링이다. 먼저 여러 차례 수상 경력에 이어 올해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 어워드(International Wine Challenge Awards 2014)에서 클래식 뀌베(Classic Cuvée) 2009년 빈티지가 또 한번 트로피를 수상한 나이팀버(Nyetimber) 와이너리. 시음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이 와이너리는 국제적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내로라하는 샴페인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은 영국 스파클링 와인의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카멜 밸리(Camel Valley) 역시 최근 몇 년간 연속해 수상 기록을 이어오고 있는 와이너리. 올해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에서 피노 누아 로제 브뤼(Pinot Noir Rose Brut)가 트로피를 수상했으며, 특히 이 와이너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콘월(Cornwall) 지방에 자리해, 꼭 와이너리 투어가 아니더라도 매력적인 풍경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끄는 곳이다. 또 한 곳의 와이너리, 애블돈(Hambledon) 빈야드는 다른 와이너리에 비해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샴페인을 양조해온 베테랑 와인메이커와 젊은 프랑스인 와인메이커가 영국 땅에서 떼루아를 가능성을 일궈가고 있다. 레드도, 화이트 와인도 생산하지 않고, 오직 스파클링 와인만 생산하며 샴페인을 능가하는 와인을 만들겠다고 하니 앞으로 출시할 와인들에 더욱 기대를 걸게 된다. 


[런던 근교, 도킹에 자리한 덴비스 와이너리]  

 

런던 근교에서 빈야드 산책을

영국 와이너리를 방문해보면 다른 국가의 와이너리들과 달리 방문객들이 대부분 영국인이라는 재미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관광을 온 여행자들은 세계적인 와인생산국도 아닌 이 나라에서 굳이 와이너리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는 까닭일 터. 하지만 런던에 조금 오래 머무는 여행자라면 멀지 않은 곳에 발걸음을 해볼만한 괜찮은 와이너리가 있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어디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투어 프로그램을 갖춘 와이너리다. 바로 런던에서 기차로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도킹(Dorking)에 자리한 덴비스(Denbies). 도킹 기차역에 내려서 도보로 15분이면 와이너리 건물에 닿을 수 있고 다다르는 동안 양쪽에 펼쳐진 빈야드에서 한가로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얼마 전 덴비스를 방문해 여름 햇살을 받고 있는 포도나무를 만나고 처음으로 영국의 빈야드를 밟았다. 와이너리에서 방문객들을 위해 하루에 몇 차례씩 운영하는 작은 기차를 타고 경사진 길을 올라가니 포도밭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높은 지대에 다다르고 눈앞에 포도가 영글기 시작한 빈야드의 풍경이 펼쳐진다. 덴비스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빈야드를 내려다보며 땅의 특성과 품종에 대한 설명을 듣는 야외 투어와 양조 시설을 둘러보고 테이스팅을 하는 실내 투어, 영상 관람 등이다. 규모에 맞게 레스토랑과 숍도 제대로 갖추고 있으니 런던 근교에서 와인과 함께 한나절을 보내기에 훌륭한 장소다.  

 

영국 와인 생산자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다. 이번에 와이너리를 방문해 들은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와인이 영국 최고 와인이라 말하지 않겠다. 영국 전역에 있는 400개가 훨씬 넘는 와이너리들에서 저마다 좋은 와인들을 만들고 있으니, ‘영국 와인’ 자체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는 당부. 그래서 영국 와인을 시음하면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몰랐던 상대를, 혹은 오해했던 상대의 매력을 발견하는 느낌. 영국에서 역대 최대 수확량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해로 평가된 2013년도의 와인을 만나는 것도, 그리고 올해의 수확 결과를 기다리는 일도 모두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는 어느새 ‘다시 만나고 싶은 영국 와인’이 되었으므로.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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