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와이너리 3곳을 들렀는데, 그 중 생산자를 직접 만난 곳은 비비그라츠네요. 


* 아래는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비비 그라츠의 예술적 정서와 만나다

  • 포도 수확이 막 끝난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역은 이제 막 분주함이 가시고 약간의 여유가 찾아온 모습이다. 플로렌스에 자리한 비비 그라츠(BiBi Graetz) 와이너리를 찾아가는 길, 아침부터 비가 흩뿌렸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조금씩 푸른 빛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예술가는 숨어있기 마련이라 했던가. 와이너리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운전해 올라가다 정확한 주소지에 다다라서도 그곳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건 눈에 띄는 간판이나 로고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도착해 와이너리 내부로 들어가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성이다. 

    그라츠 패밀리가 소유하고 있는 빈치글리아타 캐슬(Vincigliata Castle)은 플로렌스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 성은 와인 비즈니스와 분리되어 있지만, 와이너리와 나란히 자리해 비비 그라츠의 예술적인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으며 매년 수확 시즌에는 새로운 빈티지를 축하하는 화려한 가든 파티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예술가 집안으로 유명한 만큼, 곳곳에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와이너리의 입구 정원에서부터 비비 그라츠의 아버지인 유명한 조각가 기돈 그라츠(Gidon Graetz)의 조각품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와이너리를 둘러보는 동안 정원 한 켠에서 한 중년 남자가 걸어온다. 바로 와이너리의 오너인 비비 그라츠였다.
    직접 만나본 비비 그라츠는 산 위에 자리한 와이너리에 조용히 숨어 작품을 만드는 예민한 예술가라는 인상보다는, 마치 그의 와인 레이블 컬러처럼 선명하고 유쾌한 이미지를 간직한 사람이었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던 그가 화가에서 와인메이커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는 올드 빈야드 와인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호가에 머물지 않고 직접 생산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좋은 포도를 수확하는 일이었고, 1990년대 후반 마침내 피에졸레(Fiesole)의 빈치글리아타(Vincigliata) 지역을 찾아내었다. 그렇게 생산된 첫 빈티지는 2000년. 현재 비비 그라츠의 포도밭은 투스카니 지역 곳곳에 약 40헥타르가 흩어져있는데 그 중 60년이 넘는 수령의 포도나무도 상당하며, 와이너리 주변에 있는 포도밭이 특히 올드 빈야드이다. 
    비비 그라츠의 와인들은 그의 자유로운 예술적 정서를 대변하는 듯하다. 대를 이어온 가족 사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통에 얽매일 일이 없었으므로, 그는 오직 자신이 추구하는 와인을 표현해내는 데만 집중했다. 길지 않은 역사이지만 이탈리아 컬트 와인으로 특별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등장하듯 나타나 높은 점수를 받으며 화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테스타마타(Testamatta)의 경우, 첫 빈티지부터 지금까지 여러 매체와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많은 수상경력으로 비비 그라츠의 이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2003년에는 보르도 비넥스포(Bordeaux Vinexpo)에서 베스트 레드 와인(Best Red Wine)으로 선정되었고, 2006년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로부터 98점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비 그라츠의 2013년 빈티지는 어떨까. 올해는 7월까지 비가 많이 왔고 여름이 늦게 찾아와 우려의 소지가 있었으나 이후 9월까지는 정반대의 날씨로 포도가 잘 성숙할 수 있었으므로, 기대할만한 빈티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비비 그라츠의 와인을 오래 기억하는 또 한가지 요인은 바로 그가 직접 각 와인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표현해낸 인상적인 레이블 것이다. 대부분 페인팅 작업이며, 소포코네 디 빈치클리아타(Soffocone di Vincigliata)의 레이블처럼 에칭 작업도 있다. ‘crazy head’라는 의미의 테스타마타나, ‘crazy house’라는 뜻의 까사마타(Casamatta) 등 와인 이름에 깃든 의미도 재미있다.  
    비비 그라츠와 함께 테이스팅한 와인은 국내 미수입 와인을 포함해 총 네 종류였다. 보다 대중적인 접근을 위해 생산된 엔트리 레벨의 와인인 까사마타 로쏘(Casamatta Rosso)는 산지오베제 100%로, 그가 ‘편하게 마시는 테이블 와인’이라 표현했지만, 모던하면서 가격 대비 훌륭한 복합미를 보여주는 와인이었다. 소포코네 디 빈치클리아타 2011 빈티지는 산지오베제 90%, 카나이올로 7%, 콜로리노 3%의 블렌딩으로, 40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했다. 무게감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또 비비 그라츠의 아이콘 와인으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소개한 테스타마타는 올드 빈야드의 100% 산지오베제로 생산된 에너지 넘치고 강한 캐릭터의 와인이다. 그는 특별한 기술적인 요소 없이, 포도 자체의 환상적인 모습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와인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2010년 빈티지 역시 와인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98점을 받는 등 매우 성공적인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것은 생산량이 극히 적어 쉽게 만나기 힘든 비비 그라츠의 로제 와인이었다. 금빛이 감도는 컬러에 아름다운 꽃 향기와 적당한 산미를 간직한 까사마타 비노 로사토(Casamatta Vino Rosato)는 가을 오후 비비 그라츠 와이너리의 풍광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비비 그라츠의 와인들을 그의 와이너리에서 직접 만나니, 남과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비비 그라츠의 와인은 어떠한 지역이나 특별한 등급보다도 브랜드와 이미지, 와인의 느낌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성공 요인은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포도와 떼루아에 집중하고 자신의 예술성을 와인에 최대한 접목시킨 비비 그라츠의 결단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글_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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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와서 처음 쓴 기사입니다. 

사람 일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여기서도 제가 지금껏 일해오던 분야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아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네요. 


한 다리 건너 알게 된 프랑스인 소믈리에 덕분에 우연히 가게된 시음회 'The Beautiful South'.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참신한 기획에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사까지 쓰게 되었어요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남반구 와인생산국들의 아름다운 조우


런던의 가을은 서울보다 훨씬 먼저 도착한 느낌이다. 아침저녁으로 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사람들의 옷은 일찌감치 두터워졌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계절에, 풍성한 와인 행사도 찾아왔다. 런던의 가을, 이곳에서 펼쳐진 대규모 시음회 소식을 전한다. 
 
세계 와인생산국의 특별한 만남, The Beautiful South 
세계 최대 와인소비국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곤 하는 영국은 거대한 시장 규모에 걸맞게 다양한 와인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 중 지난 9월 11, 12일 양일간 런던의 올림피아(Olympia)에서 개최된 시음 행사는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신선한 기획으로 특별한 기록을 남겼다. 신세계, 그 중에서도 남반구의 세 와인생산국이 모여 준비한 아름다운 콜라보레이션으로, 이름 또한 행사의 취지를 그대로 담은 'The Beautiful South'였다. 참여 국가는 아르헨티나, 칠레,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들은 프로바인(Prowein)에서 행사를 함께 운영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성과를 토대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런던에서 신세계 와인을 집중 조명하는 대규모 시음회를 공동 개최하게 되었다. 
 
발견의 재미를 더한 ‘주제별 시음’
'The Beautiful South'는 영국은 물론이며 유럽 전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로, 첫 개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단 3개국이 모였음에도 세계 와인시장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300여 생산자들이 3천 가지가 넘는 다양한 와인들을 선보였다. 또한 이틀 동안 총 6차례에 걸쳐 남반구의 기후 변화, 와인 생산방식의 새로운 시도, 숙성잠재력 등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특히 주목할만한 점은 이들의 기획력이었다. 이 시음회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주제별 시음이었는데, 생산자별로 나뉜 부스 이외에 별도로 테마 시음 테이블을 구성해 와인 전문인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세부적인 주제는 ‘남반구 챔피언 와인들(Champions of the South)’, ‘10파운드 이상 샤르도네(Chardonnay over £10)’, ‘레드 블렌딩(Red Blends)’, ‘세부 지역 까베르네 소비뇽(Regional Cabernet Sauvignon)’, ‘올드 바인(Old Vines)’, ‘뉴 제너레이션 와인메이커(New Generation Winemakers)’로 총 6가지. 이틀간 개최된 시음회에서 3천여 가지의 와인들을 모두 시음하는 일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우니 테마 시음이 매우 좋은 가이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조건 아래서 국가별 특징을 비교해보는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기도 했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문학과 영상, 미술과 음악 등 문화예술 분야의 콜라보레이션이 흥미로운 이유는 활발한 창작 에너지 덕분이다. 'The Beautiful South'의 콜라보레이션 또한 역동적인 프로모션과 함께 와인 수출 시장의 리더로 나서고자 하는 각각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행사였다. 와인 오브 아르헨티나(Wines of Argentina), 와인 오브 칠레(Wines of Chile), 와인 오브 사우스 아프리카(Wines of South Africa) 세 단체의 대표들과 행사 기획자는 와인을 알리겠다는 같은 목표가 있었기에 함께 테이스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세 나라의 와인에는 많은 공통분모가 있지만, 또 많은 차이점도 있다. 공통점과 개성을 동시에 보여주겠다는 자신감이 진취적인 기획을 탄생시킨 셈이다. 그 결과 이틀 간 1140명의 와인 유통 담당자들, 소믈리에를 비롯한 전문가들, 언론인들이 테이스팅에 참여했고, 막스앤스펜서(M&S), 모리슨(Morrisons), 테스코(Tesco), 웨이트로즈(Waitrose), 세인스버리(Sainsburys) 등 영국의 메이저 유통회사는 물론이며 시스템블러겟(Systembolaget) 같은 유럽 회사의 바이어들도 대거 행사장을 찾았다. 
 
행사 관계자는 이번 시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계기로 앞으로 영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어져 세계 와인 시장이 더욱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내년 가을에 런던에서 다시 모일 것을 약속했다. 2014년 행사는 9월 10, 11일 ‘The Beautiful South’의 동일한 이름으로 올해와 같은 장소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글_ 안미영 기자 [영국]
사진제공_ The Beautiful South 2013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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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21닷컴에 보도된 인터뷰 기사입니다. 

[인터뷰] 스크리밍 이글의 CEO, 아만드 드 매그레(Armand de Maigret)와의 만남 
- 자연이 허락하는 최고의 와인을 위해
 
와인을 향한 간절함이 이보다 더 잘 드러나는 대상이 또 있을까. 가지기 위한 간절함, 혹은 오랜 기다림 뒤에 시음하는 그 순간을 향한 간절함. 바로 ‘돈이 있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와인’이라는 이미지로 자리잡은 컬트 와인에 대한 이야기다. 실로 미국 컬트 와인의 여러 브랜드들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구입했다는 사람이나 마셔보았다는 사람은 쉽게 만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혹시 컬트 와인의 생산자들은 의도적으로 소비자들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며 범접하기 어려운 와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그런데 그 답은 와인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이들은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고품질의 와인만을 한정적으로 생산하면서 자연스레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나파 밸리 컬트 와인의 대명사로 꼽히는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의 CEO인 아만드 드 매그레(Armand de Maigret)와 직접 대화를 나눈 뒤 더욱 그런 확신이 생겼다. 이름만 들어도 무의식적인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최고 컬트 와인의 경영자라는 선입견을 가질 새도 없이, 그는 인터뷰 내내 소탈하고도 진솔한 태도로 자신의 인상적인 와인 철학을 들려주었다.
 
대형 와인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뒤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Jonata)의 경영을 맡은 그는 아버지가 프랑스인, 어머니가 미국인이다. 프랑스에서 자랐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의 정체성은 프랑스에 좀 더 가깝다고 하면서, 지극히 미국적인 느낌을 지닌 컬트 와인 회사의 CEO가 된 것은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에게 경영을 제안한 이는 와이너리의 소유주이자 미국의 거대한 스포츠 구단주이기도 한 스탠리 크로엔키(Stanley Kroenke)였다. 아만드 드 매그레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뒤,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오너의 철학을 잘 구현하면서 동시에 젊은 와인 메이커를 이끄는 실질적인 경영자로 활약하고 있다.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는 희소가치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뛰어난 퀄리티로도 인정받고 있다. 아만드 드 매그레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조건은 농사를 잘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포도를 구입해오지 않고 우리가 직접 생산하는 포도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적은 원료로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철저하게 포도밭을 관리하고 적절한 시기에 중요한 결정을 잘 내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포도의 수확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화이트 와인인 호나타 플로르(Jonata Flor)의 경우, 복합미를 갖추도록 하기 위해 포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수확하죠. 이상적으로 익었을 때 수확한 포도가 와인의 구조감을 형성한다면 약간 일찍 수확한 포도를 통해 산미를 유지시키고 완숙 이후의 포도를 통해서는 무게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포도밭의 면적이 작음에도 짧게는 3차례 분할 수확을 하고, 2008년 빈티지의 경우는 13차례에 걸쳐 수확하기도 했을 정도로 포도 재배에 세심한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호나타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스크리밍 이글 와이너리의 도전 정신을 읽을 수 있다. 1992년 첫 빈티지가 로버트 파커에게 99점을 받으며 처음부터 경이로운 와인으로 자리매김한 스크리밍 이글의 유명세를 생각해볼 때 새로운 와인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시작하는 일이었을 터. 하지만 이들은 나파 밸리나 소노마 카운티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지역을 찾아 나서며 오히려 개척 정신까지 발휘했다. “유명하지 않은 지역 중에서 좋은 포도밭을 찾던 중,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산타 이네즈(Santa Ynez)에 가게 되었고 그 아름다운 입지에 매료되었습니다. 모래 토양이므로 쉽지만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기후와 토양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확신이 있었죠. 물론 스크리밍 이글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으므로 매우 겸손한 자세로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호나타는 2004년 첫 빈티지 생산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신생 와이너리로 인정받았고, 지금은 스크리밍 이글이 낳은 또 하나의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호나타가 이룬 큰 업적은 산타 이네즈 지역에서도 훌륭한 와인이 생산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이 지역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전에도 산타 이네즈에서 와인이 생산되고 있었지만 호나타가 완전히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이제 장기적인 목표는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를 같은 레벨의 와인으로 만드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매년 자연이 허락하는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호나타는 엘 데사피오 데 호나타(El Desafio de Jonata), 라 상그레 데 호나타(La Sangre de Jonata)의 두 가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호나타 플로르까지 총 세 가지다. 소비뇽 블랑과 세미용의 블렌딩으로 생생한 산미와 무게감의 조화를 보여주는 호나타 플로르는 보르도의 고급 화이트 와인에 비견될 만하다. 또 캘리포니아 와인 특유의 부드럽고 충만한 느낌을 선사하는 레드 와인은 탄탄한 구조감과 복합미, 우아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리 무겁지 않은 스타일이다. 아만드 드 매그레는 이러한 부분들이 스크리밍 이글로부터 물려받은 특징이라고 언급했다. “호나타는 스크리밍 이글의 기술력은 물론이고 예술적인 부분까지 물려받았어요.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이 80퍼센트, 예술적인 부분이 20퍼센트 정도 필요합니다. 호나타의 빠른 성장은 스크리밍 이글의 그 모든 가치들을 잘 이해한 덕분에 가능한 것이죠.” 
 
와이너리의 소중한 가치를 잘 구현해낸 와인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갓 서른이 된 스크리밍 이글의 와인메이커 닉 기스레이슨(Nick Gislason)과 역시 30대 초반인 호나타의 와인메이커 맷 디즈(Matt Dees)는 외부에서 보기엔 놀랄 만큼 젊지만 모두 15세 때부터 와인 양조를 배우기 시작한 오랜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특히 닉 기스레이슨은 2010년 세계적인 와인메이커들과 경쟁해 스크리밍 이글의 3대 와인메이커로 임명되며 큰 화제가 된 인물이다. “와인메이커의 역할은 양조장뿐만 아니라 포도밭에서 일을 지휘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아를 강하게 내세우지 않는 사람을 원했습니다. 우리의 와인메이커들은 흙을 만지며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면서 자신의 일을 잘 알고 있고, 또 땅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겸손한 사람들이죠.” 아만드 드 매그레는 와인메이커들이 젊다는 이유로 여러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을 때 그들의 실력과 인성을 믿고 지지했기에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컬트 와인의 정체성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과 그 한계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워낙 생산량이 적다 보니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스크리밍 이글은 60병, 호나타는 세 가지 아이템을 합쳐도 총 200여 병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 스크리밍 이글을 구입하기 위해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대기자 명단은 약 25,000여 명. 지금까지의 철학대로 와인을 만든다면 앞으로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일은 없을 듯하다. 이렇듯 양적 한계가 분명한 만큼 어떤 고객이 자신들의 와인을 마시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최종적인 고객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이 극소량의 와인이 가진 철학과 가치를 잘 알아주는 이들과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있고 그래서 회원 관리 방법에 대해서도 늘 고민한다.
아만드 드 매그레는 스크리밍 이글의 가치를 매우 명확히 표현했다. 품질, 숙성력, 가격, 그리고 정서적인 측면까지 총 네 가지라고. “품질은 와이너리가 책임지는 부분이고, 숙성력은 떼루아를 비롯한 대자연이,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며, 와인의 정서적인 면은 소비자가 느끼는 감동과 직결되죠.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와인을 갖기 위한 노력의 과정, 숙성 기간 동안 갖는 호기심과 설렘, 마침내 와인을 오픈해서 좋아하는 이들과 나누는 순간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소비자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접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컬트 와인을 두고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면 이쯤에서 오해 하나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다. 생산자들은 수량이 적은 만큼, 와인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더욱 소중히 여기며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다시 한번 농사에 대한 부분을 강조했다. 모든 것에 때가 있는 법이지만 특히 포도를 생산할 때는 가장 적합한 수확 시점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완전히 다른 와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많은 와이너리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그 적절한 시기를 조금씩 놓치기도 하지만 스크리밍 이글과 호나타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컬트 와인이라 불리는 존재도 하루 아침에 나타나 높은 점수를 받고 화제의 주인공이 된 슈퍼스타는 아니다. 중요한 것을 지켜가는 철저한 원칙이 쌓이고 또 쌓여 지금의 명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회자될만한 위대한 와인은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갈 때 탄생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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