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을 여행했습니다.
와이너리 3곳을 들렀는데, 그 중 생산자를 직접 만난 곳은 비비그라츠네요.
* 아래는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비비 그라츠의 예술적 정서와 만나다
포도 수확이 막 끝난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역은 이제 막 분주함이 가시고 약간의 여유가 찾아온 모습이다. 플로렌스에 자리한 비비 그라츠(BiBi Graetz) 와이너리를 찾아가는 길, 아침부터 비가 흩뿌렸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조금씩 푸른 빛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예술가는 숨어있기 마련이라 했던가. 와이너리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운전해 올라가다 정확한 주소지에 다다라서도 그곳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건 눈에 띄는 간판이나 로고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도착해 와이너리 내부로 들어가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성이다.
그라츠 패밀리가 소유하고 있는 빈치글리아타 캐슬(Vincigliata Castle)은 플로렌스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이 성은 와인 비즈니스와 분리되어 있지만, 와이너리와 나란히 자리해 비비 그라츠의 예술적인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으며 매년 수확 시즌에는 새로운 빈티지를 축하하는 화려한 가든 파티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예술가 집안으로 유명한 만큼, 곳곳에서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와이너리의 입구 정원에서부터 비비 그라츠의 아버지인 유명한 조각가 기돈 그라츠(Gidon Graetz)의 조각품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와이너리를 둘러보는 동안 정원 한 켠에서 한 중년 남자가 걸어온다. 바로 와이너리의 오너인 비비 그라츠였다.직접 만나본 비비 그라츠는 산 위에 자리한 와이너리에 조용히 숨어 작품을 만드는 예민한 예술가라는 인상보다는, 마치 그의 와인 레이블 컬러처럼 선명하고 유쾌한 이미지를 간직한 사람이었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그림을 그리던 그가 화가에서 와인메이커의 길로 접어들게 된 계기는 올드 빈야드 와인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호가에 머물지 않고 직접 생산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도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좋은 포도를 수확하는 일이었고, 1990년대 후반 마침내 피에졸레(Fiesole)의 빈치글리아타(Vincigliata) 지역을 찾아내었다. 그렇게 생산된 첫 빈티지는 2000년. 현재 비비 그라츠의 포도밭은 투스카니 지역 곳곳에 약 40헥타르가 흩어져있는데 그 중 60년이 넘는 수령의 포도나무도 상당하며, 와이너리 주변에 있는 포도밭이 특히 올드 빈야드이다.비비 그라츠의 와인들은 그의 자유로운 예술적 정서를 대변하는 듯하다. 대를 이어온 가족 사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통에 얽매일 일이 없었으므로, 그는 오직 자신이 추구하는 와인을 표현해내는 데만 집중했다. 길지 않은 역사이지만 이탈리아 컬트 와인으로 특별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등장하듯 나타나 높은 점수를 받으며 화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테스타마타(Testamatta)의 경우, 첫 빈티지부터 지금까지 여러 매체와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많은 수상경력으로 비비 그라츠의 이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2003년에는 보르도 비넥스포(Bordeaux Vinexpo)에서 베스트 레드 와인(Best Red Wine)으로 선정되었고, 2006년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로부터 98점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비 그라츠의 2013년 빈티지는 어떨까. 올해는 7월까지 비가 많이 왔고 여름이 늦게 찾아와 우려의 소지가 있었으나 이후 9월까지는 정반대의 날씨로 포도가 잘 성숙할 수 있었으므로, 기대할만한 빈티지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많은 이들이 비비 그라츠의 와인을 오래 기억하는 또 한가지 요인은 바로 그가 직접 각 와인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표현해낸 인상적인 레이블 것이다. 대부분 페인팅 작업이며, 소포코네 디 빈치클리아타(Soffocone di Vincigliata)의 레이블처럼 에칭 작업도 있다. ‘crazy head’라는 의미의 테스타마타나, ‘crazy house’라는 뜻의 까사마타(Casamatta) 등 와인 이름에 깃든 의미도 재미있다.비비 그라츠와 함께 테이스팅한 와인은 국내 미수입 와인을 포함해 총 네 종류였다. 보다 대중적인 접근을 위해 생산된 엔트리 레벨의 와인인 까사마타 로쏘(Casamatta Rosso)는 산지오베제 100%로, 그가 ‘편하게 마시는 테이블 와인’이라 표현했지만, 모던하면서 가격 대비 훌륭한 복합미를 보여주는 와인이었다. 소포코네 디 빈치클리아타 2011 빈티지는 산지오베제 90%, 카나이올로 7%, 콜로리노 3%의 블렌딩으로, 40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재배된 포도를 사용했다. 무게감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또 비비 그라츠의 아이콘 와인으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소개한 테스타마타는 올드 빈야드의 100% 산지오베제로 생산된 에너지 넘치고 강한 캐릭터의 와인이다. 그는 특별한 기술적인 요소 없이, 포도 자체의 환상적인 모습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와인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2010년 빈티지 역시 와인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98점을 받는 등 매우 성공적인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음한 것은 생산량이 극히 적어 쉽게 만나기 힘든 비비 그라츠의 로제 와인이었다. 금빛이 감도는 컬러에 아름다운 꽃 향기와 적당한 산미를 간직한 까사마타 비노 로사토(Casamatta Vino Rosato)는 가을 오후 비비 그라츠 와이너리의 풍광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해를 거듭할수록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비비 그라츠의 와인들을 그의 와이너리에서 직접 만나니, 남과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인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비비 그라츠의 와인은 어떠한 지역이나 특별한 등급보다도 브랜드와 이미지, 와인의 느낌을 바로 떠올리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성공 요인은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포도와 떼루아에 집중하고 자신의 예술성을 와인에 최대한 접목시킨 비비 그라츠의 결단력에서 출발한 것이다.
글_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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