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해 와인업계에 큰 이슈가 되었던 ‘마스터 오브 와인’ 로라 주엘(Laura Jewell)은 세계 와인 시장의 큰손으로 불린다. 그녀가 글로벌 와인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면, 아시아 와인업계에도 시장을 움직이는 리더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 있다. 놀라운 점은 그 주인공이 한국인 여성이라는 것. 바로 홈플러스의 와인 전문가로 활동하다 최근 테스코의 아시아 지역 전체를 총괄하게 된 오미경 와인바이어다. 

마스터 오브 와인 로라 주엘과 오미경 와인바이어
마스터 오브 와인 로라 주엘과 오미경 와인바이어

세계 5위의 와인 소비 시장인 중국이나, 역시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 와인 시장은 세계 20위에 채 미치지 못하는 규모이다. 이런 사실을 상기해보면 테스코 그룹 내에서 상위 와인 소비국의 와인 시장을 지휘하는 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약 8년 전인 2006년 5월, 홈플러스의 첫 와인전문가로 입사한 오미경 와인바이어는 그동안 한국의 일반 소비자들이 와인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을 추진해왔다. 그리고 작년, 영국의 테스코(TESCO) 본사로부터 세계적인 테스코 그룹의 와인 부문 중 아시아 시장 전체를 맡아달라는 중대한 제안을 받았다. 이는 와인바이어로서 한국을 포함해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등을 총괄하는 중책이다. 이런 제안을 받기까지 그녀는 실로 한국 와인 시장을 성장시키는 데 다양한 활약과 기여를 해왔다. 홈플러스 와인 구매 고객들을 위한 와인 페스티벌을 기획해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홈플러스의 고급 와인 브랜드인 파이니스트(Finest) 와인을 런칭하고 다양한 홍보 방식을 시도해 와인대중화에도 앞장섰다. 
 
어느덧 한국 와인 시장의 트렌드를 이끌며 아시아 와인 시장으로 나아간 오미경 와인바이어. 얼마 전 그녀는 테스코 본사와 함께 아시아 시장에 관한 향후 사업 계획을 세우기 위해 영국으로 출장을 왔다. 한국의 와인 시장과 앞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추진할 일 등 그녀에게 궁금한 점이 많던 차에, 런던에서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장소는 최근 영국 테스코에서 혁신적으로 매장을 리모델링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런던의 왓퍼드(Watford)점. 그녀는 출장 일정의 마지막으로, 테스코가 추구하는 최신 컨셉트의 와인 코너를 둘러보던 참이었다. 와인과 함께 해온 삶과 비즈니스에 대해 진솔한 답변을 들려준 오미경 와인바이어와의 대화를 전한다. 


한국에서 아시아로, 보다 큰 역할을 맡은 이후 첫 본사 출장이라 이번 영국 방문이 더욱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네, 영국 테스코의 와인 매출은 한국 홈플러스의 70배에 달해요. 그만큼 조직도 세분화되어 있는데, 마스터 오브 와인(Master of Wine)이 포함된 상품개발팀을 비롯해 고객분석팀, 바이어가 있는 와인팀, 홍보마케팅팀, 운영팀 등으로 나뉘죠. 이번 출장에서 차례대로 각 팀과 미팅을 한 뒤 공급사들과도 미팅을 가졌어요. 아시아 시장의 미래에 대한 플랜을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테스코의 아시아 총괄 와인바이어로서 앞으로 하시게 될 일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기본적으로 한국을 포함해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각 국가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각 바이어들의 요구를 수용해 홍보와 고객접근까지 지원하는 역할이에요. 아시아 고객들을 이해, 분석한 뒤 상품을 선정하고 영국 테스코에 제안을 하죠.
 
홈플러스의 첫 와인전문가로 입사해, 이제 글로벌 비즈니스로 나아가셨어요.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본다면 어떤가요. 
제가 입사했던 2006년은 홈플러스에 와인이 특별한 카테고리로 자리잡기 시작하던 때였어요. 돌아보면 입사 직후에 했던 일이 기존 와인들을 정리하고 와인 레인지를 보다 다양하게 구성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분류와 진열 작업부터 시작해 원칙을 세우는 일이 우선이었고, 그 다음에 했던 일이 고객접근이었죠. 그동안 테스코 파이니스트(Finest)와 심플리(Simply) 와인도 런칭하고 최근에는 고객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와인 선택에 팁을 제공하는 키오스크를 설치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진행해왔어요. 그리고 지난 11월에 지금의 포지션을 맡아, 영국 소속으로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시아 각국의 바이어들과도 함께 일하게 되었죠. 
 
한국의 와인바이어에서, 글로벌한 비즈니스로 서서히 나아가신 거네요. 그렇다면 와인에 빠져들어 전문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셨던 그 무렵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와인업계에 발을 디디기 전에는 외국계 레저 관련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1990년대 후반부터 와인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점점 관심이 생겨 2001년에는 동호회에 들어갔죠. 그리고 한국에서 1년 동안 와인을 공부한 뒤, 2003년 프랑스로 떠나 2년 반 동안 와인을 배우고 네고시앙에서 인턴쉽을 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돌아왔어요. 
 
10여 년 전이라면, 전혀 다른 분야인 와인 쪽으로 커리어 전환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 반응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하지만 저는 이미 그 세계가 어떤지 보고 느꼈기 때문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가 마침 와인 시장에 붐이 일기 시작해 전문인력을 필요로 하던 시기였죠. 또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바잉 경험과 시장에 대한 지식이 쌓인 다음, 세계 시장으로 비즈니스가 확대되고 역할이 커진 걸 보면, 제가 걸어온 길이 시장의 트렌드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추진하신 일 중, 파이니스트 와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파이니스트가 와인을 어렵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고, 와인대중화에도 꽤 기여를 했다고 보이는데요, 자체적으로 평가하시기엔 어떤가요?
영국 테스코에서 파이니스트 브랜드를 런칭한 건 13년 정도 되었고 한국에 본격적으로 런칭한 건 2년 반 전이에요. 총 130여 종의 와인이 출시되고 있는데, 현재 한국에 50여 종을 소개했어요. 소비자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와인부터 시작했고 앞으로는 인지도가 낮은 지역이더라도 가격대비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계속 소개할 예정이에요. 파이니스트에 이은 심플리 브랜드 역시 성공적이었고, 곧 한국에 런칭할 빈야드(Vineyard)도 좋은 반응을 얻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소비자들이 안목을 넓힐 수 있도록 리드하는 역할을 해야죠. 
 
그동안 한국 와인 시장도 꾸준히 변화해왔어요.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봐요. 제가 이 일을 시작했던 초반에는 와인 판매 수익 중 40% 정도가 선물세트 판매 수익이었는데 지금은 그 비율이 많이 줄었으니, 소비자들이 예전에 비해 주로 일상 속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다는 거죠.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한국이 앞서나가고 있는 편이고 이제 와인대중화의 시작선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앞으로 더 큰 성장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와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고, 저 역시 그 부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어요.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젠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도 영국에서는 테스코의 5파운드 미만 와인까지 평가하곤 하는데, 한국은 처음부터 프리미엄급 와인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어왔다는 점이 아쉬워요. 좀 더 대중에 포커스를 맞추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영국의 전문가 그룹과 함께 일하시면서 크게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그들은 이미 전세계 와인 시장을 꿰뚫고 있어요. 테스코 와인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20~30년의 경력을 지닌 전문가들로, 와인 시장의 흐름과 트렌드를 매우 잘 파악하고 있죠. 무엇보다도 영국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개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요. 이번 출장에서 비벤덤(Bibendum)이 주최한 와인마케팅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에도 참석했는데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와인 소비층을 분석하고 있더군요.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계속 쌓아가고 있네요.
그렇죠. 먼저 소비자들을 살피고 이해한 다음에, 와인 레인지를 개발하는 거죠. 한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는 그동안 와인마케팅 분야가 상당히 발전해온 반면, 와인 소비형태를 분석하는 데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영국시장으로부터 배우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테스코 아시아 총괄 와인바이어로서 2014년 목표로 삼은 것과 장기적인 비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올해 목표는 초반에 아시아 시장에 대한 플랜을 모두 세우고, 후반에 추진을 하는 거예요. 이를 위해 올해 초부터 각 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해 본격적인 시장 분석을 시작하고, 영국 테스코의 와인 디렉터와 함께 다시 한번 각 국가들에 출장을 갑니다. 좀 더 장기적인 비전으로는 테스코의 아시아 와인 시장을 향후 5년 안에 탄탄하게 성장시키는 거죠. 이 부분은 잠재력이 큰 중국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현재는 영국의 시스템을 따라가고 있는 상황인데, 아시아 시장이 잘 성장하면 자체적인 와인 바잉을 하는 아시아팀을 따로 만들고 싶네요.
 
새해 초부터 해외 출장으로 아주 바쁜 일정을 보내시겠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추진하시는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무르익어 한국의 와인 시장과 함께 잘 성장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신다면요? 
나중에, 은퇴 이후에는 제가 좋아하는 와인 위주의 숍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와인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편안하면서도 개성 있는 살롱 같은 공간 말이죠. 

[영국] 안미영 기자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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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 역사와 함께 진보하고 있는 와이너리, 아르지아노
  • 어느새 좋아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 존재가 생겼다면 그 다음은 당연하게도 대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지는 단계가 아닐까. 와인과 사랑에 빠진 애호가들이 언젠가 꼭 한번 시도해볼 일이 바로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것일 테다. 일상에서 즐기던 와인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와인이 만들어지는 땅을 직접 밟아보고, 공기를 느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르지아노(Argiano)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그야말로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탈리아의 몬탈치노(Montalcino) 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아르지아노 와이너리를 찾아가 직접 본 것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채 고요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진보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오랜 시간 일궈온 땅과 그곳에서 잠들고 있는 와인을 본 뒤에는, 당연하게도 아르지아노 와인을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큰 변화가 있었던 와이너리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음 물론이다.   
     
     
    시간을 잊게 만드는 역사적 공간
    아르지아노를 찾아가던 길에 맴돌던 음악은 풀랑(Poulenc)의 곡, ‘고성으로의 초대’. 교차하는 악기들의 소리가 빚어내는 실내악 선율이 신비로운 오랜 성으로 안내하듯 긴장감 넘친다. 몬탈치노에서 다시 8km 가량, 와이너리 로고가 있는 팻말을 확인한 뒤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난 길을 한참 달리자 현재의 시간을, 시대를 잊게 만드는 그야말로 고성(古城)이 등장한다. 1581년 지어진 뒤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건물의 압도적인 위상은 와이너리를 설명하는 많은 수식어를 그저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100헥타르 이상 펼쳐진 포도원과 올리브나무 과수원은 정남향의 채광과 지중해 바람의 영향을 받고 있다. 에스테이트의 뛰어난 입지는 로버트 파커가 그의 책, ‘The World’s Greatest Wine Estates’에 아르지아노를 소개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만든다. 아르지아노의 포도원에서 자라는 포도는 지리적인 조건에서 이미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남부에 위치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으로 인해 포도가 천천히 익을 수 있으며, 투스카니 지역의 아미아타(Amiata)산은 포도원을 폭풍으로부터 보호해 병충해 없이 여름을 나도록 해준다. 덕분에 아르지아노의 포도는 풍부한 컬러와 맛, 뛰어난 숙성도를 갖추게 된다. 
     
    5세기 전 페치(Pecci) 가문에 의해 지어진 뒤 귀족 가문으로 이어져 오던 이곳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1992년, 아르지아노의 입지에 매료된 백작부인 노에미 마로네 신짜노(Noemi Marone Cizano)가 소유주가 된 시점이다. 그녀는 뛰어난 와인메이커인 지아코모 타키스(Giacomo Tachis)를 와인 컨설턴트로 영입했고 품질 향상과 새로운 와인 개발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들의 열정과 와이너리의 훌륭한 토양, 기후 조건이 맞물려 아르지아노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지역에서 더욱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또 한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올해 초 브라질의 투자 그룹이 와이너리를 인수했고, 그들은 이 역사적인 와이너리를 보존하면서도 빈야드를 더욱 향상시키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컨설턴트 와인메이커인 한스 빈딩 디에르(Hans Vinding-Diers)는 계속 아르지아노의 와인메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아르지아노의 와인이 잠들고 있는 곳
    아르지아노에서 가장 특별한 공간을 꼽으라면 바로 역사가 깃든 지하 셀러일 것이다. 와이너리 건물에서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자 동굴과도 같은 스톤 셀러의 내부가 넓게 펼쳐지고 줄지어 누워있는 오크 배럴들이 눈에 들어온다. 빛과 소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이 공간은 와인이 고요히 잠들고 있는 곳,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며 숙성되는 곳이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의 명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숙성기간을 보내는 곳이자, 와인메이커의 배럴 테이스팅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므로 아르지아노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는 장소인 셈이다. 지하 셀러의 한쪽에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1970년 빈티지 와인 중 일부가 아직 숙성 중이다.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가치가 적용된 와인들
    지하 와인 셀러와 상당히 대조적인 시설도 있다. 아르지아노는 두 가지 다른 셀러를 함께 갖추고 있는데 전통적인 셀러와 함께, 1999년 도입된 최신 시설에서도 와인을 숙성시킨다. 현재 이들은 생산 과정을 전통적인 방식과 현대적인 방식으로 나눠 진행하고 있는데, 큰 규모의 와이너리인 만큼 효율적이고 발전된 시설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는 듯하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수확 시 기계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시험적으로 일부만 사용했던 작년에 이어 올해는 좀 더 많은 비율에 적용했다고 한다. 아르지아노가 뛰어난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것는 최신 기술을 양조에 적절히 적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와이너리의 역사적인 요소와 떼루아가 갖춘 우아함을 와인에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놀라운 집중도나 파워보다도 유연한 밸런스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그 조화로움은 가장 기본적인 와인인 로쏘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다. 산지오베제의 신선한 풍미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와인으로, 2011년 빈티지의 경우 지금 바로 마시기에도 좋으며 10년 정도의 숙성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또, 아르지아노를 대표한다 할만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는 풀바디이면서도 여성스러운 우아함을 갖춘 와인으로 부드러운 타닌과 스파이시한 노즈가 인상적이다. 산지오베제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아르지아노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현재 2007년과 2008년 빈티지를 만날 수 있으며, 지금 마셔도 좋지만 생산연도로부터 10년 정도 숙성된 뒤를 시음적기로 보고 있다. 강렬한 붉은 레이블의 수올로(Suolo)는 '토양(soil)'에서 연유한 이름으로, 역시 산지오베제 100%로 생산되었지만 로쏘 디 몬탈치노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는 확연히 다른 복합성을 보여준다. 2000년에 첫 생산을 했으며, 와인메이커 한스 빈딩 디에르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와인이자, 앞으로 새 오너의 야심 찬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찌감치 전량이 매진되어 와이너리에서도 다음 빈티지의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솔렝고(Solengo)는 지아코모 타키스가 처음 와이너리에 왔을 때 생산을 추진해 1995년 첫 빈티지를 출시했던 와인이다. 까베르네 소비뇽, 쉬라, 메를로를 블렌딩해, 산지오베제와 차별화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다. 
     
    아르지아노 와이너리를 방문하며 기대했던 것은 그들의 세월을 눈으로 목격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마주한 것은 와이너리의 역사는 물론이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그들이 생산하는 와인에 현대적 가치를 적용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레 변화해가는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하게 된다. 


    글_ 안미영

  •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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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로씨, 다양성 위에 화룡점정을 찍다   
  • 수많은 와이너리에서 다양한 포도 품종으로 각기 다른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고 있는 이탈리아. 피아니로씨(Pianirossi)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부티크 와이너리다. 적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단 몇 년 사이에 급부상하고 있는 이름, 피아니로씨 와인과 보다 가깝게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을 안고 직접 와이너리를 찾았다. 
    투스카니 지역에 자리한 피아니로씨 와이너리는 몬탈치노 마을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주변에 눈에 띄는 건물이라곤 없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으로 좁은 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포도밭 사이에 아늑하게 안긴 건물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방문객을 맞아준 이들은 피아니로씨의 유통을 담당하는 롱고 & 신치니(Longo & Sincini)의 마케팅 디렉터, 세르주 레베크(Serge Leveque)와 피아니로씨의 와인 메이커인 조르지오 파트리지(Giorgio Patrizi)였다. 투스카니 지역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개성을 간직한 와이너리 건물은 피아니로씨의 특별함을 대변하고 있다. 주변의 자연 풍광과 잘 어우러진 자그마한 건물의 첫인상이 말해주듯, 그들은 조용히 품질에 집중하며 고유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세르주 레베크는 피아니로씨가 화려함보다는 겸손함을 추구하는 와이너리라고 말한다. 건물의 외관뿐만 아니라 양조 시설 또한 규모가 작고 심플하지만 매우 기능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포도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서서 그에게 피아니로씨의 출발과 그들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와이너리에서 보낸 몇 시간 동안 피아니로씨의 특별한 가치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피아니로씨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토즈(TOD'S)의 CEO인 스테파노 신치니(Stefano Sincini)가 설립한 와이너리다. 패션 브랜드와 와인이 바로 연결되진 않지만, 사실 스테파노 신치니는 토즈의 CEO가 되기 훨씬 전부터 와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마르께(Marche)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했고, 그 역시 늘 와인에 대한 꿈과 열정을 잊지 않았다. 1999년 그가 투스카니 마렘마(Maremma) 지역에 왔을 당시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떼루아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고 2001년 피아니로씨 와이너리를 설립해 이탈리아의 유명한 와인메이커인 카를로 페리니(Carlo Ferrini)를 영입한 뒤, 이곳에서 자신의 비전을 하나씩 실현해나갔다.  
    피아니로씨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한가지 요소는 바로 몬테풀치아노 품종이다. 스테파노 신치니가 기반을 다진 포도밭은 작은 규모지만 아주 다양한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처음부터 복합적인 조건을 만족시키며 여러 포도 품종을 재배할 수 있었다. 그는 고향인 마르께에서 보아온 경험을 토대로, 이 땅이 마르께 지역과 마찬가지로 몬테풀치아노 품종을 기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와인메이커에게 몬테풀치아노 재배를 요청해 피아니로씨만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갔다. 현재 피아니로씨는 투스카니 지역 와이너리 중 가장 많은 비중의 몬테풀치아노를 재배하고 있으며 동시에 산지오베제, 까베르네 소비뇽, 알리칸테, 쁘디 베르도 등을 함께 재배해 독창적인 블렌딩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세상에 내놓은 피아니로씨의 첫 작품은 솔루스(Solus) 2005년 빈티지이다. 세르주 레베크는 이 와인을 처음으로 수출한 국가가 한국이고, 2007년 첫 번째 병을 오픈한 곳이 바로 서울의 포도플라자 건물이었다고 말하며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을 떠올렸다. 이들은 규모가 크지 않고 생산량이 적은 만큼, 일대일로 직접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와인을 알리는 감성적인 접근에 주력하고 있다. 점수에 연연해하기보다는 독특한 블렌딩과 새로운 시도로, 소수의 사람들이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와인을 만들고자 한다.  
    와이너리에서 시음한 피아니로씨 와인을 통해 각 와인의 특징뿐 아니라, 블렌딩에 따른 각각의 개성을 확인해볼 수 있었다. 산지오베제 65%, 몬테풀치아노 35%로 만든 시두스(Sidus) 2010년 빈티지는 신선하고 풍부한 과실 향에 부드러운 타닌으로 여운을 남기며 여러 가지 음식과 쉽게 매칭하기 좋은 스타일이다. 피아니로씨의 정신을 반영한 와인으로 소개된 솔루스(Solus)는 산지오베제와 몬테풀치아노가 각각 45%씩 블렌딩되었으며 10%의 알리칸테가 아름다운 컬러를 더해주고 있다. 뛰어난 밸런스에 검은 과실의 느낌, 뚜렷한 타닌이 강건한 느낌을 준다. 투스카니 지역에서 아주 좋은 빈티지로 평가 받는 2007년 빈티지가 다소 높은 산도와 우아함을 갖췄다면 2008년 빈티지에서는 더 신선하고 섬세한 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블랙 레이블의 피아니로씨(Pianirossi) 2008년 빈티지는 쁘띠 베르도 40%, 몬테풀치아노 30%, 까베르네 소비뇽 30%로, 블렌딩 비율이 아주 특이한 와인이다. 2006년 첫 빈티지를 시작으로 현재 2008년까지 총 세 빈티지를 출시했으며 쁘띠 베르도를 주요 품종으로 사용해 구조감을 차별화했다. 2008년 빈티지는 현재 마시기에 잘 숙성된 모습이지만 앞으로도 충분한 숙성잠재력을 가진 와인이다. 마지막 시음으로는, 2012년에 생산되어 아직 블렌딩을 하지 않은 몬테풀치아노와 쁘띠 베르도를 테이스팅 하며 숙성 중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품종들이 만나 3~4년 후에 어떤 모습의 피아니로씨 와인으로 출시될지 흥미로운 기대감과 궁금증이 일었다. 
     
    그들의 철학과 와인, 그리고 공간이 간직한 공기를 통해 와이너리에서 느낀 피아니로씨의 겸손한 가치는 레이블과도 쉽게 연결이 된다. 심플한 빨간 점 하나가 가리키는 것은 피아니로씨의 붉은 토양을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이탈리아 와인의 다양함 속에서도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하고 조용히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이 마치 화룡점정과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디테일에 집중한다는 것, 그것이 곧 완벽을 향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와인은 땅에서부터 시작된 수많은 순간으로 완성된다. 피아니로씨가 오늘의 이 순간을 거쳐 어떠한 역사를 만들어갈지, 그 미래를 예견해보고 기다리는 것은 기자로서도, 와인애호가로서도 즐거운 일이다. 


    글_ 안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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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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