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으로 진행되는 시음회를 다닐 때마다 드는 생각 한가지. 와인 시음회는 어떤 면에서 수많은 미술 작품이 전시되고 거래되는 아트페어와 닮았다. 시음회에 참석해 한 손에는 글라스를, 다른 한 손에는 카탈로그를 들고 행사장에 마련된 각 부스를 돌아다니는 일은 마치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만나기 위해 넓은 전시장을 누비는 미술장터의 풍경과도 흡사하다. 시음 후 마음에 든 와인이 있다면 전시장을 한바퀴 돈 뒤 다시 찾아와 시음해보는 것조차도 점 찍어둔 그림을 뒤돌아와 다시 보는 감상 방식과 닮았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행사에는 공통적으로 ‘발견의 기쁨’이라는 것이 있다.
지난 11월 24일, 롯데호텔에서 ‘2011 Wines from Spain: Far from Ordinary’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스페인 와인 전시회는 평소 접하지 못했던 스페인 와인들이 대거 등장해 발견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행사였다. 주한 스페인대사관 경제상무부, 스페인무역진흥청, 스페인 상공회의소 최고협의회에서 주최한 이번 전시회는 30여 개 와이너리가 참여해 자신들의 다양한 와인을 소개했다. 총 300여 종에 달하는 와인 중에는 이미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 와인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이 국내 미수입 와인이었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와인업계 관계자들은 감각을 활짝 열어둔 채 수많은 와인을 시음하며 각 와인의 특성을 확인해나갔다. 스페인 와인에 대한 큰 관심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성황리에 개최된 이번 행사에서, 몇몇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전한다.

품종과 지역의 다양성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의 생산성은 그에 따라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 그런데 서서히 와인산지를 개척하고 1990년대부터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는 등 꾸준한 투자로 괄목한 성장을 이뤘고, 다양한 기후에서 토착 품종의 개성이 드러나는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스페인 와인 전시회가 바로 그 다양성의 일면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리오하, 리베라 델 두에고, 라 만차, 페네데스, 히아스 바이사스 등 여러 산지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전시되었으며 예술적인 레이블에서부터 시선을 끄는 와인이 많았고, 맛과 향도 와이너리에 따라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었다. 시간을 두고 마셔보고 싶고 그 느낌을 묘사하고 싶은 와인들이 상당수였다.


뒤돌아, 다시 찾게 되는 와인들
가장 붐볐던 부스는 리베라 델 두에고 지역의 와이너리인 ‘Pago De Los Capellanes’. 이들은 5가지 레드 와인을 소개했는데, 템프라니오 품종으로 만들 수 있는 우아함과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모든 와인이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는 ‘Bodegas Enguera’ 와이너리나, 2006년 설립된 짧은 역사의 와이너리이지만 ‘Huno’라는 와인으로 호평을 얻은 ‘Pago Los Balancines, S.L.’ 역시 인상적이었던 부스다. 시음회장을 돌다 보면 ‘선택과 집중’의 문제 앞에 놓이게 되지만, 이번에는 전시된 모든 와인을 모두 조금이나마 경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앞설 정도로 흥미로운 와인이 많았다.

스페인 화이트 와인의 재발견
이번 시음회의 큰 소득 중 하나는 기대 이상의 화이트 와인을 만났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전통적으로 레드 와인 위주로 수출이 이루어졌고, 고급 화이트 와인을 찾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옛날 말이 되었다. 스페인 와인 전시회에서는 비우라, 알바리뇨 등 스페인 토착 품종으로 생산된 화이트 와인들이 두드러진 매력을 발했다. 현대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낸 신선한 화이트 와인은 스페인 화이트 와인의 역사가 바뀌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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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첫인상
- 루이자도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

얼마 전, 한 미술관에 들렀다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입구’라는 작품과 조우했다. 사진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해체해 그림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밝은 색채가 자유롭게 뒤엉켜 환희의 빛을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작품의 제목이 ‘입구’임을 상기하게 되었고, 잠시 그림 앞에 서서 새로운 대상과의 만남을 앞둔 설렘과 긴장감에 대해 생각했다. 새로운 와인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그것이 한 해의 햇와인인 보졸레 누보와의 첫만남이라면.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는 단순히 부르고뉴의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이라고만 정의 내리기에는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새로운 빈티지에 대한 기대와 축제의 의미가 보졸레 누보에 특별함을 더하고, 평소에는 자주 마시지 않는 가메(Gamay) 품종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기에도 좋은 기회다. 그래서 출시일인 11월 셋째 주 목요일에는 곳곳에서 햇와인의 출시를 축하하는 보졸레 누보 파티가 개최되고, 많은 이들이 기대감을 품은 채 새로운 빈티지와 첫만남을 가진다. 
올해는 하루 먼저 보졸레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지난 11월 16일 저녁,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개최된 시음 행사는 루이자도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Louis Jadot Beaujolais Villages Primeur) 2011년 빈티지가 주인공인 캐주얼한 파티였다. 이 와인을 수입하는 ㈜까브드뱅의 유안근 대표는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졸레 빌리쥐 프리뫼르 2011을 시음하는 것”이라 말하며, 보졸레 누보의 의미 중 하나인 ‘축제’를 강조해 어느 때보다 특별한 건배 제의를 했다.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Beaujolais Villages Primeur)는?
일반적으로 ‘누보(nouveau)’는 수확된 뒤부터 다음 수확 전까지 유통되는 와인을 말하며, ‘프리뫼르(primeur)’는 수확된 뒤부터 이듬해 봄까지 유통되는 와인을 말한다. 그러니 보졸레 프리뫼르(Beaujolais Primeur)는 좀 더 엄격한 의미의 햇포도주인 셈. 프랑스 전역에서 수십 가지의 프리뫼르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름이 길고 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은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지만 루이자도는 전통적인 의미의 프리뫼르 명칭을 사용한 보졸레 누보를 내놓고 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2011년 빈티지
그렇다면 올해 보졸레 누보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지금까지 ‘최고 빈티지’라 손꼽히며 매우 높은 평가를 받은 해가 2009년인데, 올해는 보졸레 누보 역사상 가장 작황이 좋은 해였기에 출시 전부터 2009년보다 더 큰 기대를 모았다. 4~6월 동안 유래 없이 높은 기온과 일조량을 기록해 풍부한 과실 풍미를 갖춘 포도가 생산되었다는 것. 실제로 루이자도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 2011을 시음해본 이들은 보졸레 누보 특유의 신선한 아로마에 잘 익은 과일 향이 어우러져 구조감이 좋은 와인이라는 의견이었다. 2010년 빈티지와의 비교 시음 시에도 확연하게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며 젊고 상큼하면서도 우아한 매력을 발휘했다.

루이자도의 노하우가 담긴 와인
프랑스 부르고뉴의 와이너리 루이자도는 샤블리 지역부터 보졸레까지 아우르는 넓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굴과 샤블리의 완벽한 마리아주로 루이자도 샤블리가 소개되었고, 로마 신화의 주신(酒神)인 ‘바쿠스’의 두상이 새겨진 레이블로도 잘 알려져 있다. 루이자도에서 생산하는 보졸레는 포도를 구입해 양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 소유한 포도원에서 양조해 와이너리의 철학과 노하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기계 수확을 배제하고 손 수확을 고수하며 적절한 알코올 도수와 진한 풍미를 일관적으로 유지한다. 

보졸레 누보는 일반 레드와인의 시음 온도인 16~18도보다 조금 낮은 온도인, 12~13도에서 가장 화려한 매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루이자도 보졸레 빌라쥐 프리뫼르의 시음 결과, 이 와인은 지금 바로 마시기에도 물론 좋았지만 2~3년 정도 숙성한 뒤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다. 작황이 특히 좋았다는 2011년 빈티지이니, 수년간 숙성 가능한 잠재력을 기대해본다. 물론, 시간이 흘러도 올해 11월 셋째 주에 느낀 첫만남의 설렘과 와인의 예쁜 첫인상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지만 말이다. 

글_ 안미영
사진제공_ (주)까브드뱅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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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안띠 지역의 오랜 보물, 바론 리카솔리(Barone Ricasoli)

바론 리카솔리(Barone Ricasoli)는 끼안띠 지역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생산자이다. 산지오베제의 매력을 최대한 표현해내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왔고 마침내 세계적인 끼안띠를 생산해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와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아직 마셔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명성을 통해 먼저 만나게 되는 와인이기도 하다. 한 와인애호가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포도로 생산된 와인을 경험하다가도, 와인을 통해 처음 기쁨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와인이 바론 리카솔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와인은 어떤 멋을 지녔기에 수많은 와인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애호가들이 극찬하고, 평론가들이 호평하는 것일까. 얼마 전 그 답을 확인해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와인 칼럼니스트이자 바론 리카솔리의 브랜드 앰배서더인 조엘 페인(Joel B. Payne) 씨가 내한해, ‘수퍼 끼안띠라고 불리는 바론 리카솔리의 와인들을 테이스팅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

건강을 위하여!”라는 멘트로 긍정의 기운을 가득 담은 첫인사를 건넨 조엘 페인 씨는 바론 리카솔리가 성장해온 세월을 토대로,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한 와이너리의 유구한 전통을 단 몇 시간 사이에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차근차근 이어가는 그의 브리핑을 통해 바론 리카솔리의 특별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테이스팅을 함께 하며 매 와인에 대한 느낌과 특징을 표현하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바론 리카솔리 와인에 관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900여 년에 달하는 역사로,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오래된 와이너리라는 사실이다. 물론 역사가 길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의 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기나긴 세월 동안 어떤 방식으로 와이너리를 성장시키고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왔는지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리카솔리 가문이 1141년 도시 국가 시절에 카스텔로 디 브롤리오(Castello di Brolio) 와이너리를 설립하면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역사는 이후 품질을 향상시키며 세계적인 끼안띠 와인 생산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경, 리카솔리 가문에서 끼안띠 와인의 한 획을 그었던 또다른 스토리가 존재한다. 1874년 토스카나 지역의 대공국 군주였던 바론 베티노 리카솔리(Barone Bettino Ricasoli)가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양조 방식을 제안했는데, 그의 제안은 1967DOC 1984 DOCG 규정이 정해질 당시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는 새로운 포도원을 확장하고 수많은 실험을 거쳐 끼안띠 클라시코의 블렌딩 기법을 선보인 인물이며, 이는 바론 리카솔리가 끼안띠 클라시코의 상징이자 시초라는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바론 리카솔리는 현재 끼안띠 클라시코 지역의 포도원 중 가장 큰 소유지에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리카솔리 가의 32대 손인 프란체스코 리카솔리(Francesco Ricasoli)가 와이너리를 이끌고 있는데, 그는 경제학 전공과 광고계에서 사진작가로 일한 경험을 살려 와인을 마시는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나가기 시작했다. 바론 리카솔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방문객들을 위한 리셉션 룸과 테이스팅 룸을 새로 만들었다. 1993년에는 20년 넘게 위탁 관리를 했던 주류 회사 시그램(Seagram)으로부터 와이너리를 인수해 양조시설을 현대화하고, 단위 면적 당 포도 생산량을 감소해 품질 개선에도 힘을 쏟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중점을 둔 것은 산지오베제 경작에 적합한 토양을 만들기 위한 개간 사업이었는데, 이를 통해 만들어낸 우수한 토질은 바론 리카솔리의 맛과 품질에 튼튼한 밑바탕이 되었다. 품질과 커뮤니케이션,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해온 프란체스코 리카솔리의 성과는 바로, 글라스에 담긴 바론 리카솔리 와인의 풍미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조엘 페인 씨와 함께 바론 리카솔리의 와인 6종류를 시음하는 동안, 그들이 오롯이 표현해내기 위해그토록 노력했다는 산제오베제 고유의 특성을 느껴보려 했다. 전반적으로 튀는 인상을 주는 와인이 없었고, 일관되게 고상하고 기품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와인은 어린 산지오베제부터 농익은 산지오베제까지, 한 가지 포도 품종이 보여줄 수 있는 넓은 범위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조엘 페인 씨는 끼안띠 지역 와인 특유의 산미를 잘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 와인에 맞는 시음 적기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산도와 타닌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와인의 잠재력을 가늠해보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굳이 이들의 전통을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와인 자체에서 은근히 묻어나는 깊이와 클래식한 멋이 바론 리카솔리의 이름을 견고하게 형성하는 요인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글_ 안미영
사진제공_ (주)까브드뱅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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