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스텔 델 레메이(Castell del Remei)의 블렌딩 예술

새해가 밝았다. 시간의 흐름이나 해가 바뀌는 것에 둔감한 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달력과 다이어리를 앞에 놓고는 새삼 한 해 계획을 세워보게 되는 시점이다. 하지만 2012년 새해를 맞았다 해서, 2011년과 섣불리 안녕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좋은 자리에서 감동적인 와인과 마주했던 지난 연말의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 작년은 유독 훌륭한 와인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한 해였고, 특히 늦가을부터 이어지던 와인 행사들은 연말을 화려하게 장식해주었다.
지난해에는 특히 스페인 와인에 대한 좋은 기억이 많은데, 11월 스페인 와인 전시회에서 국내 미수입 와인들을 대거 만난 데 이어, 12월 말에는 까스텔 델 레메이(Castell del Remei) 디너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한 블렌딩의 까스텔 델 레메이 와인을 소개하며, 아직 조금 더 간직하고 싶은 스페인 와인의 여운을 전한다.


스페인 까딸로니아의 가장 오랜 와인

까스텔 델 레메이는 어떤 역사를 지닌 와이너리인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120km, 지중해로부터 100km 떨어진 까딸로니아(Catalonia) 서쪽에 자리한 까스텔 델 레메이의 역사는 1780년부터 시작된다. 프랑스 보르도의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 방식에 자극을 받아 시작한 까스텔 델 레메이 와이너리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스페인에서 최초로 외래 포도인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세미용 블랑(Semillon Blanc) 와인을 생산했으며, 까딸로니아 지방에서 최초로 오크 숙성을 시작한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이토록 새로운 시도는 수출 증가의 요인이 되어 까스텔 델 레메이의 성장에 가속도를 붙였고, 이들은 19세기 이후 까딸로니아 지방에서 가장 규모가 큰 와인생산자가 되었다. 1889년에서 1907년까지는 까스텔 델 레메이 와인이 연속해서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며 인정받는 시기였다. 이후 설립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 와이너리의 성장은 한동안 주춤했으나 1982년 새로운 주인을 만나며 영광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조화로운 블렌딩의 결과는? 

현재, 스페인 토착 품종과 외래 품종의 조화로운 블렌딩은 까스텔 델 레메이의 와인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이들은 템프라니요(Tempranillo), 가르나차(Garnacha) 등 스페인 토착 품종에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 시라(Syrah) 등 국제적인 품종을 블렌딩해 절묘한 품종의 궁합을 찾아내었고, 복합적인 풍미를 보여주는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까스텔 델 레메이의 와인을 마시다보면 블렌딩 비율에 대한 장황한 설명보다는, 와인을 통해 양조자가 찾아낸 그 조화로운 접점을 느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블렌딩 시 어떤 지점에서 맛의 차이가 확연히 다르게 바뀌는지, 한마디로 ‘다른 스타일’의 와인으로 탄생되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잘 블렌딩된 와인 한잔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해소되는 느낌이 든다.


까스텔 델 레메이의 와인들

현재 국내에 수입되어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는 까스텔 델 레메이의 와인은 총 5종류이다. 마카베오(Macabeo)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 블렌딩된 블랑 플라넬(Blanc Planell)은 풍부한 열대과일과 시트러스향으로 화사한 인상을 주며 ‘젊은 화이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샤르도네(Chardonnay)와 마카베오(Macabeo)를 블렌딩한 또다른 화이트 와인 오다 블랑(ODA Blanc)은 집중된 산도가 특징이고, 레드 와인 오다(ODA)는 과일향과 스파이시한 향 사이에서 좋은 구조감을 자랑한다. 또 고띰 브루(Gotim Bru)는 템프라니요(Tempranillo), 가르나차(Garnacha),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시라(Syrah) 5가지 품종을 블렌딩해 탄생했으며 가격 대비 우수하고 안정된 품질로 극찬을 받고 있다. 와이너리의 설립년도가 곧 품명이 된 1780은 그 이름에 걸맞게 풀바디의 중후한 인상을 남기는 와인이다. 


시음해본 까스텔 델 레메이의 와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와인은 바로 고띰 브루였는데, 농익은 과일향이나 적당한 무게감과 타닌 등이 역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을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력적인 고띰 브루의 여운을 즐기며 스페인 와인의 더 큰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초’의 길을 걸으며 과감한 블렌딩을 시도했던 까스텔 델 레메이를 보면, 낯선 것을 받아들이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근사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새해에도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와인들을 통해 종종 감동을 느끼는 순간이 오게 되길 바라며, 2012년의 시작을 축복해본다.

글_ 안미영  사진제공_ ㈜와이넬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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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순간에 함께한 샹파뉴, 폴 로저(Pol Roger)

프랑스의 명품 샹파뉴 브랜드로 알려진 폴 로저(Pol Roger)는 올해 또 하나의 수식어를 더하게 되었다. 바로 ‘웨딩 샹파뉴’라는 것. 폴 로저는 지난 봄 큰 화제가 되었던 영국의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에서 공식 웨딩 샹파뉴로 선정되며, 그간 쌓아온 명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영국에서 로열 웨딩이 있던 4월에는 한국에서도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 폴 로저가 특히 인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와인 모임 자리에서는 셀러에 아껴둔 폴 로저를 들고나와 의미 있는 건배 제의를 하기도 했다.
봄날의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주었던 폴 로저를 12월 2일, 가문의 5대 직계 후손이자 현재 오너인 위베르 드 빌리(Hubert de Billy)의 방한과 함께 다시 만나게 되었다. 프랑스 에뻬르네(Epernay)에서 태어난 그는 폴 로저 하우스에서 20년 넘게 글로벌 마케팅을 이끌었다. 현재는 폴 로저 샹파뉴 하우스의 최종 승인 과정에 관여하며, 와인메이커인 도미니크 쁘띠(Dominique Petit)와 함께 각 뀌베(Cuvee)의 블렌딩 결정에도 참여한다. 위베르 드 빌리는 올해 윌리엄 왕자의 웨딩 공식 샹파뉴 선정에 대해 “영국의 왕실 공급 샹파뉴 하우스를 포함해 총 7개의 회사가 참여해 경쟁이 매우 치열했지만, 폴 로저 가문이 고수해온 정책과 철학을 인정받아 영광스러운 순간을 함께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폴 로저의 특징을 소개했고, 폴 로저가 고집하고 있는 제조 방식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프랑스의 대표 샹파뉴 하우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폴 로저는 1849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의 3대 가족 소유 샹파뉴 하우스 중 하나이며 2004년부터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샹파뉴 공급처로 지정되어 폴 로저의 모든 샹파뉴에 ‘왕실 인증서(Royal Warrant)’ 공식 마크가 표기된다. 2차 발효를 거친 뒤 침전물을 모으는 병돌리기 과정인 ‘흐미아쥬(Remuage)’를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직접 진행하는 유일한 샹파뉴 하우스라는 점에서 이들이 얼마나 전통적인 수작업 방식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위베르 드 빌리가 수작업 방식과 더불어 강조한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숙성 과정과 기간이었다. 폴 로저의 지하 숙성고는 약 7.5킬로미터 깊이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에뻬르네 지역에서도 가장 깊고 서늘한 구역이며, 이곳에 약 750만병에 달하는 샹파뉴가 저장되어 있다. 이토록 서늘한 곳에서 오랜 시간 발효를 시키는 것이 우아한 기포의 요인이 된다. “작은 차이가 모여 큰 차이를 이룬다”는 위베르 드 빌리의 말처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수작업과 시간 투자가 지금의 폴 로저를 만든 것이다.
이날,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네 가지 폴 로저를 위베르 드 빌리의 설명과 함께 모두 시음해보았다. 다양한 음식과의 매칭에서도 근사한 풍미를 보여준 폴 로저의 샹파뉴들을 소개한다. 

폴 로저 뀌베 써 윈스턴 처칠 (Pol Roger Cuvee Sir Winston Churchill) 폴 로저를 말할 때 윈스턴 처칠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경주마 이름을 ‘폴 로저’로 지을 정도로 폴 로저 가문과의 돈독한 관계를 과시해온 윈스턴 처칠은 매일 폴 로저를 마실 정도로 이 샹파뉴를 사랑했다. 1975년에는 윈스터 처칠 사후 10주년을 기념해, 처칠 경 생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중후한 샹파뉴가 탄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뀌베 써 윈스터 처칠’이다. 이 샹파뉴의 양조법은 가족들만이 공유하고 있는 비밀이라고 한다. 첫 빈티지 이후 2011년까지 총 12개 최고 빈티지에만 한정적으로 생산되었으며, 지난 7월부터는 아시아나항공 퍼스트 클래스에서 기내 와인으로 선정되어 서비스되고 있다. 기자간담회에서 시음한 빈티지는 1999년이었는데 이것이 가장 최근 빈티지였으며, 내년 즈음에는 2000년 빈티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포도 수확년도부터 9~10년 세월을 숙성시킨 만큼, 파워풀하면서도 섬세한 버블의 기운과 묵직한 바디감이 상당히 돋보였다.

폴 로저 로제 빈티지 (Pol Roger Rose Vintage)
좋은 빈티지에만 선보이는 폴 로저 로제 빈티지 샹파뉴는 피노 누아 65%에 샤르도네 35%를 블렌딩해 만들며, 약 7년간 병 숙성을 시킨 후에 출시한다. 2002년 빈티지를 시음했는데, 글라스에 따라질 때부터 복숭아 빛깔이 도는 아름다운 핑크빛 컬러에서 매우 고혹적인 샹파뉴라는 인상을 받았다. 풍부한 기포가 끊임 없이 올라오며 토스티한 향에 부드럽고 우아한 맛으로 여운을 남겼다.

폴 로저 브뤼 빈티지 (Pol Roger Brut Vintage)
특정한 해에 수확한 포도만을 사용해 만든 빈티지 샹파뉴. 프리미엄 크뤼와 그랑 크뤼에서 수확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를 6대 4의 비율로 블렌딩해 만들며 약 8년 간의 병 숙성 후 출시한다. 2000년 빈티지를 시음하며 폴 로저 빈티지 샹파뉴의 꽉 짜인 구조감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다른 샹파뉴에 비해 산도가 두드러진 편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발랄함이 잦아들고 무게감이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폴 로저 브뤼 리저브 (Pol Roger Brut Reserve)
바로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공식 웨딩 샹파뉴로 선정된 주인공. ‘화이트 호일’이란 애칭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넌빈티지(Non Vintage) 샹파뉴 중 하나로, 빈티지 샹파뉴와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 개성적인 맛과 향을 보여주었다. 편안한 산미에 매끈한 질감으로, 연이어 글라스를 다시 채우고 싶은 샹파뉴였으며 로열 웨딩으로 유명해진 폴 로저의 명성을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듯했다. 

위베르 드 빌리는 2011년이 폴 로저에게 특별한 해였음을 언급하며 한국에서의 성장도 대단했다고 말했다. 한해 동안 매출이 3배 이상 성장했으니 한국 와인 시장에서 괄목한 만한 성과임에 분명하다. ‘윈스턴 처칠이 사랑했던 샹파뉴’와 ‘영국의 왕실 인증 샹파뉴’에, 이제 ‘웨딩 샹파뉴’라는 영광의 수식어까지 더한 폴 로저의 미래 행보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글_ 안미영
사진제공_ (주)금양 인터내셔날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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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도록 알아온 와인애호가 중 한 명은 와인 선물이 고민스러울 때 종종 와인 대신 와인글라스를 선물하곤 했다. 적당한 가격대에서부터 개인의 취향에 맞는 국가와 포도품종까지 고려해야 하는 와인에 비해, 누구나 이름 그 자체로 고개를 끄덕일만한 좋은 브랜드의 와인글라스가 더 쉽고 적당한 선물이 되리라는 생각이었다. 이때 선택은 주로 리델(Riedel)이었다.
그렇다면 좋은 와인글라스의 기준은 무엇일까? 리델 글라스에서 말하는 기준은 우선 공명이 맑으며 내부표면으로 와인이 천천히 흘러내려 와인의 색상을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맛을 인지하는 혀에 정확하게 와인이 닿게 하는 날렵한 테두리(Rim)가 필수적이다. 또한 손의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글라스의 대(Stem)가 길어야 하고, 향을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도록 잔이 커야 한다는 것. 지난 11월 25일 저녁,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개최된 리델 글라스 테이스팅의 주인공이 바로 리델 글라스 중에서도 크기로 유명한 비늄 XL(Vinum XL) 시리즈였다. 리델 사에서는 수공예 글라스 외에도 기계로 만들어내는 글라스를 개발해 각 와인에 맞는 모양과 사이즈의 글라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전파해왔다. 비늄 시리즈는 소믈리에 시리즈처럼 기능성 잔이면서도 보다 저렴해, 많은 사람들이 와인의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하도록 하고 있다. 비늄 XL 시리즈는 이러한 머신메이드 글라스 중에서도 가장 큰 볼을 가지고 있는 글라스이다.
리델 사는 글라스의 장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방식보다는, 글라스 테이스팅(Glass Tasting)을 개최해 시음을 하는 이들이 글라스에 따른 와인의 차이를 직접 느끼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여러 번 리델 글라스 테이스팅이 진행되어 왔고, 이를 경험해본 이들의 감흥은 언제나 신기하다는 반응이 우선이었다. 리델 글라스의 어떤 점들이 시음을 한 사람들을 놀랍게 하는가? 글라스의 종류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와인의 풍미를 경험하고 나면, 한가지 와인으로 시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같은 와인이란 사실을 도통 믿기 힘들다고 한다. 이것이 한결같이 놀랍다는 반응이 절로 나오는 이유. 리델 글라스의 진가를 궁금해하던 중, 이번 리델 비늄 XL 글라스 테이스팅에 참석해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테이스팅을 진행한 이는 현재 리델 글라스의 CEO이자 리델 가문의 10대손인 게오르그 리델(Georg J. Riedel)이었다. 기계로 만들어내는 글라스 사업을 개발해 리델 사의 사업을 확장시키고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구축한 인물. 그는 “the key to wine”이라는 말로, 글라스는 와인 시음을 위한 매우 중요한 도구임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피노누아, 시라,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3가지 비늄 XL 글라스를 앞에 두고 먼저 미네랄 워터를 이용해 테이스팅을 시작했다. 물을 각기 다른 글라스에 따라 마셨는데, 글라스의 모양에 따라 물이 입안에 처음 닿는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질감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고 미세하게 다른 미네랄의 느낌도 경험했다. 다음 순서는 피노누아 와인. 첫번째 피노누아 글라스에서는 풍부한 과일향과 산도감을, 시라 글라스에서는 미네랄과 집중도 높은 향을, 마지막 까베르네 소비뇽 글라스에서는 지나치게 높은 산도감과 거친 미감을 남겼다. 세 글라스의 가장 큰 차이는 아로마였다. 섬세한 아로마의 뉘앙스를 잘 잡아놓는 볼, 그리고 혀의 단맛을 느끼는 부위에 와인이 닿도록 테두리가 디자인된 피노누아 글라스가 가장 적당하다는 결론이었다. 다음으로 시라를 세 가지 글라스에 따랐는데, 다른 글라스에 비해 시라 글라스에서 매우 크리미한 질감을 보여주며 와인 본연의 장점을 온전히 발휘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은 역시 다른 글라스에 비해 보르도 글라스에서 가장 섬세하고 풍부한 맛과 향이 발현되었다. 게오르그 리델 씨는 와인의 부케가 충분히 발산될 수 있는 큰 볼로 디자인된 이 까베르네 소비뇽 글라스가 메를로와 까베르네 프랑을 마시기에도 적합한 잔이라고 말했다.
세가지 와인을 모두 글라스 테이스팅으로 경험한 뒤에는 음식과의 조화를 확인하기 위해 초컬릿과 함께 하는 테이스팅이 이어졌는데,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각기 다른 글라스에 마시며 초컬릿을 먹어보니 초컬릿 맛 역시 차이가 났다. 적합한 잔에 마신 와인과 함께했을 때 음식의 맛도 조화롭다는 건 이쯤 되면 당연한 차이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 이날 게오르그 리델 씨는 잘못된 글라스 선택의 예로, 플라스틱 컵에 따라진 와인을 가리켰다. 글라스에 따라 와인의 아로마를 거의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비늄 XL 글라스를 경험하며, 커다란 볼 안에서 와인이 아름답게 흔들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글라스 테이스팅은 와인을 만나는 일이 사람을 만나는 일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는지가 중요하듯, 각기 다른 와인들을 어떤 도구를 활용에 마시는지가 중요하다. 시음의 가장 중요한 도구인 글라스의 중요성을 확인하며,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경험을 했다. 미세한 차이가 커다란 감각의 차이로 연결되는 것. 신기하고도 흥미롭다.


글_ 안미영

* 와인21닷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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