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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와인의 도약, 그 중심에 있는 토레스 

    스페인 와인을 두고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 혹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와인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한다. 스페인 와인이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짙고 강렬한 개성을 지닌 레드 와인들이 큰 역할을 했고, 여러 밸류 와인들이 가격 대비 높은 만족도를 선사해온 덕분이다. 최근에는 한국무역협회 통계 자료를 통해 스페인 와인이 각광받고 있다는 사실이 수치로도 명확히 드러나며, 스페인 와인의 약진이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올 4월까지 와인 수입금액을 기준으로 봤을 때, 스페인 와인은 작년에 비해 50.7%가 늘어났으며 이는 주요 와인 수입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 6월 25일 토레스(Torres)의 오너, 미구엘 토레스 주니어(Miguel Torres Jr.)가 방한한 자리에서도 스페인 와인의 매력과 한국에서의 성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스페인 페네데스(Penedes)에서 출발한 세계적인 와인 기업
    대표적인 스페인 와인으로 언급되는 이름이며 동시에 세계적인 와인 생산업체인 토레스는 17세기부터 와인 생산을 시작했고 1870년 와이너리를 설립해 지금까지 가족 경영으로 이어오고 있다. 1995년에 있었던 125주년 기념 행사에는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 국왕이 참석했을 정도로 스페인 내에서는 이미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와이너리다. 가문의 5대손인 미구엘 토레스 주니어가 자랑스럽게 강조한 것은 토레스가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가족 기업이며 세계적인 가족 경영 와이너리들의 모임인 ‘와인명가협회(Primum Familiae Vini)’의 회원사라는 사실. 가족 구성원들이 각각 사업을 맡아 세계적으로 영역을 확장해왔으며, 독립적인 자본으로 경영해 수익의 95%를 시설 개발과 연구에 재투자할 정도로 미래를 내다보며 과감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러한 도전이 인정받아 2006년 와인 인수지에스트(Wine Enthusiast)로부터 ‘유럽 베스트 와이너리(Best European Winery of the Year)’에 선정되었고, 환경보호에도 앞장서 2010년에는 영국의 권위 있는 잡지 드링크 비즈니스(The Drinks Business)에서 선정한 ‘올해의 그린 컴퍼니(Green Company of the Year)’를 수상했다. 
     
    토레스가 스페인 이외 국가에서도 친숙한 이름이 된 것은 토레스 패밀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고객들을 만나고 신뢰를 쌓아온 까닭이다. 이들의 다이내믹한 역사를 살펴보면, 1979년 칠레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에 미구엘 토레스(Miguel Torres) 와이너리를 설립해 최초로 칠레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여러 첨단 기술을 도입해 칠레 와인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1982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Sonoma County) 서부에 토레스 마리마르 에스테이트(Torres Marimar Estates)를 설립해 미국에서도 와인 생산을 시작했다. 
     
    한국 시장에 보다 가깝게, 한글 백라벨! 
    현재 토레스의 와인은 세계 160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는데,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비중이 크고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는 상대적으로 수출량이 적은 편. 하지만 토레스에서는 한국을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주목하고 얼마 전에는 한글 백라벨 제작도 추진했다. 그 결과 지난 6월 말에는 한국에서 특히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마스 라 플라나(Mas La Plana), 그랑 코로나스(Gran Coronas), 상그레 데 토로(Sangre de Toro) 3가지 와인에 한글 백라벨을 붙여 출시했다. 수입한 뒤 한글 설명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직접 와인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한글로 소개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는 토레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토레스 대표주자들과의 만남
    미구엘 토레스 주니어와 함께 한 자리에서는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와인부터, 아직 수입되지 않은 와인, 그리고 토레스를 대표하는 와인까지 특별한 리스트를 선보였다. 처음으로 서빙된 것은 칠레의 미구엘 토레스에서 토착품종인 파이스(Pais)로 생산하는 산타 디그나, 에스텔라도 로제 스파클링(Santa Digna, Estelado Rose Sparkling 2011). 아름다운 로제 컬러를 띠며 작고 섬세한 기포가 끊임없이 올라오는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으로, 9회 칠레 와인 어워즈(9th Annual wines of Chile Awards)에서 칠레 최고 스파클링(Chile’s Best Sparkling)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두 번째로 시음한 것은 스페인 페네데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레스 밀만다(Torre, Milmanda 2010)로, 국내 미수입 와인. 스페인 로열 패밀리의 결혼식 때 항상 등장한다고 알려진 토레스 밀만다는 가벼운 오크 터치, 바닐라 향, 복합적인 과실 아로마와 함께 뛰어난 산도가 돋보인다. 
     
    이날 나온 세 종류의 레드 와인은 각각 토레스 칠레와 스페인, 그리고 장 레옹의 베스트 셀링 와인이자 아이콘 와인으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100%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들어졌다. 흔히 ‘만소(Manso)’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미구엘 토레스 만소 데 벨라스코(Miguel Torres, Manso de Velasco 2008)는 칠레 쿠리코 밸리(Curico Valley)에서 생산되며 쿠리코 시를 건립한 만소 델 벨라스코 장군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수령이 100년 넘은 포도나무에서 재배된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들어지는 이 와인은 구조감과 집중도, 화려함을 모두 갖추고 둥글둥글한 탄닌으로 편안한 느낌을 선사한다. 다음은 토레스 마스 라 플라나(Torres, Mas La Plana) 1999년과 2008년 비교 시음이 이어졌다. 5년의 세월과 14년의 세월을 보낸 와인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숙해졌는지를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시음이었다. 스페인이 매우 더웠던 1999년 빈티지는 부드럽고 우아한 풍미에 깊은 나무 향을 간직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약간 서늘했던 2008년 빈티지는 풍부한 과실 아로마에 약간의 스파이시한 풍미가 이어지며 아직 어린 인상을 남겼다. 미구엘 토레스 주니어는 이 와인을 두고 20년 이상 숙성이 가능하지만 약 10년 정도 보관했을 때를 시음 적기로 본다고 말했다. 토레스의 자랑거리인 마스 라 플라나는 전 세계 시장 중에서도, 한국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빙된 장 레옹 까베르네 소비뇽 그랑 리제르바(Jean Leon, Cabernet Sauvignon Gran Reserva 2003)는 마스 라 플라나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페네데스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 1996년 세상을 떠난 장 레옹이 그의 절친한 친구 미구엘 토레스에게 1994년 자신의 와이너리를 넘기며 토레스 패밀리에서 경영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미구엘 토레스 주니어의 누나인 미레야 토레스(Mireia Torres)가 경영을 맡고 있다. 싱글 빈야드 와인으로 좋은 해에만 생산되는 이 와인은 마스 라 플라나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포도밭에서 생산되지만 상당히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다. 잘 익은 과일 향과 약간의 허브 향, 스파이시한 풍미를 갖추고 있으며 뛰어난 구조감과 긴 숙성 잠재력을 가진 와인이다. 
     
    시음한 와인들은 모두 토레스의 조화롭고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했고, 규모가 커졌지만 개성을 지키며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고자 하는 토레스의 가치를 뚜렷이 전해주었다. 토레스의 와인은 공정무역, 환경보호, 바이오다이나믹 등을 실천하며 업계와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기업 철학과 품질을 향한 부단한 노력이 잘 반영된 결과물인 것이다. 


    글_ 안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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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라뚜르, 마크 앨런 수출이사와의 만남
- 와인 그 자체의 '진실성'에 대하여
 
부르고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가족 경영 와이너리, 루이 라뚜르(Louis Latour)는 긴 역사와 전통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지닌 와이너리이다. 2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치며 빛나는 영광의 순간도 있었고, 의미 있는 변화의 순간도 있었다. 지난 6월 3일, 한국을 찾은 루이 라뚜르의 아시아 태평양 담당 수출이사 마크 앨런(Mark Allen)을 만나 루이 라뚜르의 역사를 관통하는 철학에 대해 물었다. 그는 단순히 루이 라뚜르, 혹은 부르고뉴 와인으로만 주제를 한정하기보다는 와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길 원했다. 와인이라는 존재와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세계 와인 산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보여준 마크 앨런 이사 덕분에 대화는 풍성했으며,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1797년 설립된 루이 라뚜르는 현재 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부르고뉴 와인 생산자 중 마지막으로 남은 독립적인 가족 회사이며 부르고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그랑 크뤼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1997년에는 한 분야에서 2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가족 경영기업이자 창업자의 이름이 유지되고 있는 기업만이 가입할 수 있는 레 제노키앙(Les Henokiens)의 회원사로 등록되기도 했다. 이후 1999년, 루이 파브리스 라뚜르(Louis Fabrice Latour)가 사업을 승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그는 2012년 프랑스 와인업계의 가장 중요한 인물 200인 중 13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루이 라뚜르에 23년째 몸담고 있는 마크 앨런 이사는 부르고뉴의 많은 와이너리들이 그렇듯, 루이 라뚜르 또한 특별한 마케팅을 해오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고품질의 와인이 곧 마케팅”이라며 가장 중시하는 것이 역시 품질임을 강조했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다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와인이 곧 루이 라뚜르의 정신이자 영혼이라 생각한다고. 만약 품질 이외에 루이 라뚜르를 설명하는 또 한가지 키워드를 꼽는다면 바로 ‘전통’이 될 것이다. “루이 라뚜르는 부르고뉴에서 최대 규모의 네고시앙이므로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온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도 있었는데, 혁신적인 변화보다는 전통을 지키며 현재를 살고 있는 와인 소비자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트렌드에 맞게 성장해 왔지만, 결코 트렌드를 쫓아갔던 건 아니었죠. 그러니 ‘절제’라는 단어 또한 루이 라뚜르와 잘 어울리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자로서 그만큼의 책임감도 있을 법하다. 그것은 바로 부르고뉴 와인의 매력을 알리는 전도사의 역할이며, 루이 라뚜르는 그 역할에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수 차례 방한한 마크 앨런 이사는 한국 시장이 참 흥미로운 곳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은 물론 잠재력이 큰 시장입니다. 그런데 잠재력 이상의 무언가가 또 있어요. 7년 전에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 하나로 와인붐이 일어난 걸 보면 놀랍죠. 와인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빨리 변하고 뜨거운 성장이 가능한 나라이므로 아시아에서도 한국 시장을 잘 공략하면 더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도 와인 문화가 들어온 지 꽤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와인이 더욱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로 정착하길 바란다고 한다. 루이 라뚜르가 부르고뉴 와인을 좀 더 친숙하고 일상적으로 즐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친다. 물론 많은 이들이 부르고뉴 와인을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가깝게 다가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고급 와인의 경우, 그 품질을 인정하면서도 가격 면에서 쉽게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마크 앨런 이사는 어렵다는 인식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부르고뉴 와인이 오히려 단순하고 쉬운 면도 있어요. 포도 품종도 피노누아, 샤르도네, 가메이로 간단한 편이죠. 각 마을의 생산량이 적고 생산자가 많이 나뉘어있다는 점에서 어렵다는 낙인이 찍혔지만, 그 인식조차 특정한 이미지로 자리잡은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와인이 생활 속에서 즐기는 음료라는 편안한 이미지로 작용할 수 있다면 부르고뉴 와인도 한국 시장에 더 깊숙이 정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마크 앨런 이사가 생각하는 부르고뉴 와인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부르고뉴 와인을 포함해, 와인이라는 존재가 가진 ‘진실성’을 언급했다. 자연에서부터 시작해 한잔의 와인으로 완성된, 와인 그 자체의 ‘힘’이야말로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영국인이지만 프랑스의 음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해, 대학 졸업 후 프랑스로 이주하고 와인 산업에 뛰어든 그 또한 우연히 와인에 매료된 덕분에 이 길로 오게 된 셈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와인과 맞아떨어졌고, 루이 라뚜르와 인연을 맺게 되었죠.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와인에 대한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와인이 매개가 되어 발생하는 긍정적인 기운과 에너지는 그의 말투에서도 묻어났다. 
 
와인이 가끔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와인을 둘러싼 다양한 역사가 마침내 좋은 균형을 이루게 되었을 때 보여주는 훌륭한 모습 덕분이다. 마크 앨런 이사는 그것을 사람의 신체에 비유했다. 신체의 복잡한 각 기관이 잘 갖춰져 하모니를 이루는 것과 와인의 조화가 흡사하다고. 그는 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와인 시장과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이 더 좋은 와인을 만드는 길임을 강조했고, 당장 눈앞에 있는 와인을 홍보하기 위한 말들보다는 그들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와인의 미덕이란 것이 사실 그렇지 않던가. 명확하게 규정하고 딱 떨어지는 표현으로 묘사될 수 없을 만큼 섬세함이나 복합성을 갖춘 존재. 마크 앨런 이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루이 라뚜르가 걸어온 길 역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편하거나 쉬운 것을 굳이 찾지 않는, 그럼으로 현재 부르고뉴의 상징적인 가족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루이 라뚜르의 철학과 마주한 듯한 느낌이었다. 

글_ 안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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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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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의 정수를 즐기다


와인과 음식의 환상적인 궁합에 대해 말할 때 다른 와인생산국보다 특히 자주 언급되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그 어느 국가의 와인보다 이탈리아의 와인과 음식 매칭에서 감탄을 할 때가 많다는 것은 이탈리아의 상차림에서 와인이 단순히 술이 아닌 하나의 음식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4월 26일 플라자 호텔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투스카니'에서 개최된 '투스칸 와인 디너'는 음식과 와인 매칭이 탁월한 행사였는데,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도 토스카나 지역의 와인들을 집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번 디너는 와인수입사 엘비와인에서 산지오베제(Sangiovese)의 매력을 깊이 느껴볼 수 있는 행사로 기획했고, 음식을 책임진 플라자 호텔  투스카니의 사무엘 주카(Samuel Zucca) 셰프는 와인 리스트를 미리 받아본 뒤 각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준비했다. 이탈리아 북동부 프리울리(Friuli) 지역의 명문 요리사 가문 출신인 사무엘 주카 셰프는 런던, 두바이, 방콕 등의 톱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고 작년 3월부터 플라자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 와인을 준비한 팀과 음식을 준비한 팀, 양쪽의 철저한 기획과 메뉴 구성은 디너 내내 빛을 발했다. 이날의 메뉴는 와인과의 섬세한 매칭을 고려해 기존 투스카니 레스토랑의 메뉴에는 존재하지 않는 요리까지 선보이기도 했다.
 
산지오베제의 다양한 매력! 가비아노 & 세나토이오
음식과 와인의 궁합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비슷한 지역에서 동일한 포도로 양조된 와인들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한국에 새롭게 런칭한 카스텔로 디 가비아노(Castello di Gabbiano)는 오랜 전통을 지닌 끼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포도원 중 하나. 12세기부터 와인 양조를 시작해 피렌체의 유수한 가문들로부터 800년이 넘는 역사를 이어왔다. 특히 15세기 초부터 18세기까지 와이너리의 주인이었던 소데리니(Soderini) 가문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와 각별한 관계에 있었다고 전해져 온다. 무엇보다도 이 와이너리는 그들이 소유한 포도밭과 재배하고 있는 포도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산지오베제 품종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와인 품질의 극대화를 위해 최신식 양조 기술을 새롭게 도입했으며, 전통과 기술의 조화를 통해 가비아노만의 개성을 만들어가고 중이다.  
 
투스칸 와인 디너의 또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 와이너리는 세나토이오(Cennnatoio). 토스카나의 끼안티 지역 중심부인 판자노(Panzano) 마을에 위치한 이 와이너리는 옛 메디치 가문의 감옥으로 쓰이던 대저택으로, 수감자들의 가족과 연인들이 감옥을 향해 신호(이태리어로 ‘cenni’)를 보내던 것에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와이너리의 출발은 1971년, 레안드로 알레시(Leandro Alessi)와 그의 부인인 가브리엘라 알레시(Gabriella Alessi)가 이 저택을 구입하여 포도 재배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유명한 와인메이커인 비토리오 피오레(Vittorio Fiore)와 가브리엘라 타니(Gabriella Tani)의 자문을 통해, 1985년 첫 빈티지를 내놓았다. 세나토이오 와이너리는 가비아노와 대조적으로 역사가 길지 않고 규모도 작은 편이지만 천연 이스트만을 사용해 천연발효과정을 거치며, 제초제 등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친환경 와이너리로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디너에 등장한 가비아노와 세나토이오의 레드 와인들은 모두 산지오베제가 중심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같은 품종이 다른 와이너리에서 다른 양조자의 손길을 거쳤을 때 어떻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명확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그 상이한 느낌은 음식과의 매칭만큼이나 흥미로웠고, 산지오베제 품종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한 듯했다. 투스칸 와인 디너에서 서빙된 와인과 음식의 풍성한 만남을 소개한다. 
가비아노 피노 그리지오 2011 (Gabbiano Pinot Grigio 2011)
매칭 음식 : 아뮤즈 부쉐 
첫 와인과 첫 음식으로 등장한 가비아노 피노 그리지오와 아뮤즈 부쉐는 가볍고 산뜻한 신전주와 애피타이저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식욕을 자극했다. 이탈리아 북동부의 서늘한 기후와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에서 생산된 피노 그리지오로 만든 이 와인은 열대과일과 레몬, 미네랄의 느낌이 잘 어우러진다. 
 
가비아노 끼안티 2011 (Gabbiano Ghianti 2011)
매칭 음식 : 홈메이드 스파게티, 홋카이도산 털게, 체리토마토, 레몬더스트
산지오베제 90%, 메를로 7%, 까베르네 쇼비뇽 3%로 양조된 가비아노 끼안티는 끼안티 지역에서 가장 대중적인 와인으로 손꼽히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팔리는 끼안티 와인이다. 부드럽고 목넘김이 좋아 어느 음식이나 두루 매치하기에 편한 스타일이며 털게가 재료로 사용된 스파게티와도 좋은 만남을 이뤘다. 체리와 산딸기 같은 향긋한 향이 먼저 느껴지며 부드러운 탄닌과 적절한 산도에 약간의 스파이시한 느낌도 전해진다. 
 
세나토이오 끼안티 클라시코 오로 2010 (Cennatoio Chianti Classico Oro 2010)
매칭 음식 : 오리 가슴살, 오렌지허니소스, 발사믹리덕션, 양파, 근대
황금빛 레이블에 연극의 한 장면을 스케치한 그림이 인상적인 세나토이오 끼안티 클라시코 오로는 산지오베제의 클론 중 하나인 산지오베제 그로소(Sangiovese Grosso) 95%에 콜로리노(Colorino) 5%로 양조되었다. 처음 시음했을 때 산지오베제의 느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농후하고 강건한 스타일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글라스 안에서 점차 변화해가는 모습이 느껴진다. 다양한 수상경력으로 가격대비 우수한 퀄리티를 자랑하는 와인이다. 
 
가비아노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2009 (Gabbiano Chianti Classico Riserva 2009)
매칭 음식 : 양갈비, 핑크솔트
앞서 시음한 세나토이오 끼안티 클라시코와는 대조적으로 산지오베제의 전형적인 특징인 신선하고 부드러운 산미를 간직하고 있는 와인이다. 처음부터 딸기와 체리 등 풍부한 과실향이 올라오고 바닐라와 초콜릿 풍미도 느낄 수 있으며 매끈한 질감으로 우아한 인상을 전한다. 가비아노 끼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는 부드러운 탄닌 덕분에 핑크솔트를 사용한 양갈비 요리의 맛과 질감을 함께 즐기기에도 훌륭했다.
 
세나토이오 에트루스코 2006 (Cennatoio Etrusco 2006)
매칭 음식 : 72시간 수비드 소고기 볼살, 양파, 슈가빈, 감자퓨레
토스카나 지역에 살던 에트루리안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종족이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있는 모습을 레이블에 담았다. 품종 사용에 자유로운 ‘수퍼 투스칸’이지만 세나토이오 에트루스코는 토착품종인 산지오베제 그로소만을 사용했고, 이는 지역의 영토와 문화, 민족의 힘을 강조하는 레이블과도 연결된다. 손수확 후 최고의 포도만을 골라내어 양조한 뒤 프렌치 오크통에서 16~18개월간 숙성했다. 이 와인 또한 산지오베제의 의외성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하고 진한 풍미를 갖춘 풀바디 와인이다. 양고기나 소고기, 육즙이 풍부한 육류 요리와 즐기기 좋으며 이날 디너에서는 수비드 조리법으로 60도 정도의 온도에서 72시간 동안 부드럽게 익힌 소고기 볼살 요리와 매칭되어 서로의 모습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칸티나 콜리 에우가네이 만조니 모스카토 2012 (Cantina Colli Euganei Manzoni Moscato 2012)

매칭 음식 : 요구르트 3종 디저트, 와일드베리, 허니, 초콜릿

디저트와 함께 서빙된 와인은 베네토 지역에서 생산된 만조니 모스카토 품종의 와인. 한국에 수입되는 만조니 모스카토 와인은 바로 이 와인 한 가지라고 한다. 핑크빛 컬러에 달콤한 베리향과 은은한 장미향이 여성스러운 느낌을 전한다. 일반적인 모스카토에서 기대할 법한 발랄한 기포와 경쾌한 산미 이상의 복합미를 보여줘 디저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글_ 안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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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iyoung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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